[책마을] 전쟁부터 조개잡이까지… 기원전 최고 스펙은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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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에릭 샬린 지음 /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436쪽│1만8000원
에릭 샬린 지음 /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436쪽│1만8000원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군대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러 나섰을 때였다. 널찍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엔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도 다리도 없었다. 전차는 배로 실어 날랐지만 병사와 말은 수영으로 강을 건넜다. 병사와 장비를 실을 만한 배를 만들 재료도 시간도 부족해서였다. 병사들은 공기를 넣어 부풀린 염소가죽을 부양장치로 삼았다. 기마병은 말의 갈기를 붙잡고 헤엄을 쳤다. 정복전쟁을 이끌었던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자신의 왕궁 알현실에 당시 모습을 돋을새김 장식으로 기록해 놓았다. 이처럼 수영은 청동기시대와 고대 시기까지 핵심적인 군사용 기술이었다.
세계를 정복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로마의 군대는 정복전에서 수영의 가치를 몸소 입증했다. 서기 4세기에 나온 로마 병법서 ‘군사학 논고’에서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는 군대에서 수영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모든 젊은 병사는 예외 없이 여름철에 수영을 배워야 한다. 가끔은 강을 다리로 건너는 게 불가능해서 유격대와 뒤따르는 부대가 모두 수영으로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는 인류의 시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문명과 문화에서 인간이 물과 어떻게 친해졌고, 수영이라는 활동을 해왔는지 살펴본다. 현직 수영 코치이자 연구자인 저자는 육지 포유류 가운데 왜 영장류만 물에 몸을 담그고 그걸 즐기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과 영장류가 물속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타고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함이다. 저자는 인류의 초기 조상이 물에서 왔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수생유인원 가설을 책 첫머리에서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인간의 타고난 친수성을 설명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유역과 중국 등에 나타난 최초의 도시문명은 수영이 생존기술로 사용됐던 강 유역에서 발달했다. 유목민이었을 때와 달리 정착한 인간들은 바다와 호수, 강에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 헤엄을 치고 다이빙을 했다. 문명이 좀 더 발달하고 계층화되면서는 기호와 사치를 위한 수영도 필요해졌다. 진주, 밝은색 조개껍데기 등이 청동기시대 이후 권력자들의 장식품이 되면서 진주조개잡이는 하나의 큰 산업이 됐다.
기원전 5세기에 수영은 도시국가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스, 로마, 카르타고 같은 해상제국을 건설하면서 수영은 선원과 군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존기술이었다. 급기야는 인공 수영장에서 수영을 연습하며 체력과 기술을 연마했다. 하지만 중세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간이 물과 멀어졌다. 기독교는 비기독교의 신들과 초자연적 존재를 전부 없애버리고 유일신으로 대체했다. 인간과 물고기의 혼합종인 인어 같은 개념도 발붙일 데가 없어졌다. 남성의 나체를 찬미하던 그리스·로마식 예술 표현도 사라졌다. 벌거벗고 활동했던 체육관과 공중목욕탕은 도덕적으로 미심쩍게 여겨지면서 문을 닫았다.
괴물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됐던 물의 세계가 인간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였다. 수영이 건강에 유익하고 귀중한 군사 기술이자 즐거운 취미활동이라는 고대의 기록을 다시 발견한 결과였다. 이후 대항해 시대를 맞은 유럽인들은 세계를 탐험하며 새로운 물의 세계를 접하게 됐고, 수영에 관한 인식은 더욱 확산됐다.
저자는 수영장이 사각형인 이유, 세계 최초의 지상 수영장이었던 모헨조다로의 대욕장, 고대부터 사용된 다이빙 벨, 중세시대에는 하층민의 취미였던 수영, 1876년 센강에 만들어진 수영장 등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카를 융과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물과 수영의 상징,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 ‘해저 2만리’에 나오는 표준잠수복 다이버들, 여배우의 수중발레에서 시작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잠수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인간의 물속 탐험은 그 오랜 역사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 우주선이 드넓은 우주로 진출한 것에 비하면 그렇다. 잠수부가 얕은 해저를 걸을 수 있도록 공기 호스로 수면과 연결된 잠수복은 18세기에 나왔다. 잠수부를 마침내 수면과의 연결에서 해방시킨 새 스쿠버 기술은 20세기에 개발이 시작됐다. 1942년 잠수용 수중호흡기인 아쿠아렁이 개발되면서 마침내 공기 호스 없이도 수중을 탐험할 수 있게 됐다. 심해 탐사기술은 여전히 저개발 상태다. 저자는 “지구에서 38만㎞나 떨어진 달에는 유인 우주선이 여섯 번이나 착륙했지만 깊이 10㎞밖에 되지 않는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에 가본 사람은 단 네 명뿐”이라고 지적한다. 지구 표면의 71%를 덮고 있는 바다를 개척하려면 물과 더 친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세계를 정복한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로마의 군대는 정복전에서 수영의 가치를 몸소 입증했다. 서기 4세기에 나온 로마 병법서 ‘군사학 논고’에서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는 군대에서 수영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모든 젊은 병사는 예외 없이 여름철에 수영을 배워야 한다. 가끔은 강을 다리로 건너는 게 불가능해서 유격대와 뒤따르는 부대가 모두 수영으로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는 인류의 시원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문명과 문화에서 인간이 물과 어떻게 친해졌고, 수영이라는 활동을 해왔는지 살펴본다. 현직 수영 코치이자 연구자인 저자는 육지 포유류 가운데 왜 영장류만 물에 몸을 담그고 그걸 즐기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과 영장류가 물속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타고난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함이다. 저자는 인류의 초기 조상이 물에서 왔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수생유인원 가설을 책 첫머리에서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인간의 타고난 친수성을 설명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유역과 중국 등에 나타난 최초의 도시문명은 수영이 생존기술로 사용됐던 강 유역에서 발달했다. 유목민이었을 때와 달리 정착한 인간들은 바다와 호수, 강에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 헤엄을 치고 다이빙을 했다. 문명이 좀 더 발달하고 계층화되면서는 기호와 사치를 위한 수영도 필요해졌다. 진주, 밝은색 조개껍데기 등이 청동기시대 이후 권력자들의 장식품이 되면서 진주조개잡이는 하나의 큰 산업이 됐다.
기원전 5세기에 수영은 도시국가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스, 로마, 카르타고 같은 해상제국을 건설하면서 수영은 선원과 군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존기술이었다. 급기야는 인공 수영장에서 수영을 연습하며 체력과 기술을 연마했다. 하지만 중세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간이 물과 멀어졌다. 기독교는 비기독교의 신들과 초자연적 존재를 전부 없애버리고 유일신으로 대체했다. 인간과 물고기의 혼합종인 인어 같은 개념도 발붙일 데가 없어졌다. 남성의 나체를 찬미하던 그리스·로마식 예술 표현도 사라졌다. 벌거벗고 활동했던 체육관과 공중목욕탕은 도덕적으로 미심쩍게 여겨지면서 문을 닫았다.
괴물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됐던 물의 세계가 인간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였다. 수영이 건강에 유익하고 귀중한 군사 기술이자 즐거운 취미활동이라는 고대의 기록을 다시 발견한 결과였다. 이후 대항해 시대를 맞은 유럽인들은 세계를 탐험하며 새로운 물의 세계를 접하게 됐고, 수영에 관한 인식은 더욱 확산됐다.
저자는 수영장이 사각형인 이유, 세계 최초의 지상 수영장이었던 모헨조다로의 대욕장, 고대부터 사용된 다이빙 벨, 중세시대에는 하층민의 취미였던 수영, 1876년 센강에 만들어진 수영장 등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카를 융과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물과 수영의 상징,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 ‘해저 2만리’에 나오는 표준잠수복 다이버들, 여배우의 수중발레에서 시작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잠수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인간의 물속 탐험은 그 오랜 역사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 우주선이 드넓은 우주로 진출한 것에 비하면 그렇다. 잠수부가 얕은 해저를 걸을 수 있도록 공기 호스로 수면과 연결된 잠수복은 18세기에 나왔다. 잠수부를 마침내 수면과의 연결에서 해방시킨 새 스쿠버 기술은 20세기에 개발이 시작됐다. 1942년 잠수용 수중호흡기인 아쿠아렁이 개발되면서 마침내 공기 호스 없이도 수중을 탐험할 수 있게 됐다. 심해 탐사기술은 여전히 저개발 상태다. 저자는 “지구에서 38만㎞나 떨어진 달에는 유인 우주선이 여섯 번이나 착륙했지만 깊이 10㎞밖에 되지 않는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에 가본 사람은 단 네 명뿐”이라고 지적한다. 지구 표면의 71%를 덮고 있는 바다를 개척하려면 물과 더 친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