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보호무역이란 자물쇠, 사람이 열쇠다
“최근 의회에서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대한 개정 논의가 있었다. 이는 대통령의 무제한 관세(unlimited tariffs) 부과 권한을 축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미국 하원의원-민주당)

“자유무역은 미국에도 계속 효과가 있었음이 입증돼 왔으며, 우리는 이런 경제적 현실과 이론에 충실해야 한다.”(미국 하원의원-공화당)

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미국 의회, 행정부 등에 보낸, 미국의 철강 고율관세 부과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에 대한 회신 중 일부다.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에 반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의 통상정책은 많은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6개국 정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은 미국의 보호무역과 그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나타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세계 7대 교역국이다. 수출만 놓고 보면 2017년 한국의 수출액은 5740억달러로 세계 6위다. 이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보호무역으로 인한 수출 감소는 국가 경제의 생사가 달린 중차대한 사안이다. 한국 경제의 생존을 위해서는 보호무역의 파고를 반드시 넘어야 한다.

필자는 보호무역 대응 열쇠 중 하나가 민간 네트워크, 즉 사람의 활용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세계에 뻗어 있는 기업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 수출 강국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세계 86개 주요국에 1만1397개 이상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고 미국만 보더라도 800여 개 기업이 나가 있다. 이들이 파악하는 진출국 기업, 정부 동향 등의 정보를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수시로 교환하고, 통상문제 대응에 활용한다면 보호무역 극복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기업 네트워크와의 상시 교류채널을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경제단체가 보유한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 전경련의 경우를 보더라도 31개 주요국과 경제협력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무역협회 등 타 단체들도 주요국과 수십 년간 쌓아온 민간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지난 5월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최근의 자동차 관세 부과 여부 조사 등 미국 보호무역 조치의 근거법인 무역확장법 232조 개정 노력에도 경제단체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미 의회 내에서도 이 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있는데, 정부가 직접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운 만큼 우리 민간단체와 미국 오피니언 리더의 연대를 활용한다면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전경련 등 경제단체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 미국 상공회의소 등 세계 주요국과 민간 경협위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이들과 공동보조를 이룬다면 보호무역 반대를 위한 국제공조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상문제 해결에 민간 전문가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 통상문제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의 200여 명 남짓한 인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이들 중 일부 공무원은 순환근무로 인해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면도 있는 만큼 다년간 통상 분야 전문성을 쌓아온 민간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는 게 좋다. 통상 분쟁 현장에는 정부 당국자보다 민간인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를 위해 평상시 연구소 기업 로펌 등 민간 전문 인력과 정부 내 통상전문가의 교류, 협력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덩샤오핑은 평소 자신의 고향 쓰촨성 속담인 ‘흑묘백묘(黑苗白描)론’을 주장하며 개방 반대 측을 설득해왔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국민을 잘살게 하는 데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보호무역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 구분없이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보호무역 파고를 넘기만 하면 된다. 당국의 현명한 용인술이 절실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