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보다 더 무서운 게 배임죄라고 입을 모은다. 언제 어떤 식으로 걸릴지 알 수 없어서다. 법령(형법 제40장 355조 업무상 횡령·배임죄)상 배임죄는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해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기대되는 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이 모호한 데다 ‘경영상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사당국이 일단 배임죄로 걸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게 경제계의 오랜 불만이기도 하다.

배임 액수가 50억원이 넘으면 형법이 아니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 적용돼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진다. 살인죄(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이다. CEO들이 배임죄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배임죄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회사에 16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재판에 넘겨진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지난 3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4월엔 이석채 전 KT 회장이 100억원대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각각 포스코와 KT 회장에 오른 정 전 회장과 이 전 회장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퇴임 압박에 시달렸다. 정권 차원의 ‘하명 수사’나 특정인을 타깃으로 삼는 ‘표적 수사’의 ‘칼’로 배임죄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사례들 때문이다.

경제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형법 개정을 통해 배임죄 규정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인천지방법원이 “업무상 배임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위헌 요소가 있다”며 제청한 위헌법률심판(2017헌가18) 사건을 심사 중이다.

미국에선 업무상 배임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을 통해 민사재판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는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진이 성실하고 공정하게 경영상 판단을 통해 기업 활동을 했다면 손해를 발생시켰다 하더라도 책임을 면하는 법리다. 독일과 호주도 회사법에 경영 판단에 대해선 면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과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은 ‘손해를 가할 목적’을 배임죄 성립 요건으로 명문화해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다. 서울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배임죄와 관련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남용될 소지가 많다”며 “경영 판단의 원칙과 배임죄 관계에 엄격한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형/안대규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