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돼지들의 축구.’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을 부르는 팬들의 비아냥을 집약한 말이다. 몸싸움을 싫어하고 개인플레이에 집중해 팀을 파국에 빠뜨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그쳤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일찌감치 짐을 쌌다.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16강에선 인구 34만 명의 아이슬란드에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배부른 돼지’ 수식어는 이제 과거의 유물로 남을 듯하다. 잉글랜드가 스웨덴의 철벽 수비를 무너뜨리고 28년 만에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해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다시 살렸다.

잉글랜드는 7일(현지시간) 러시아 사마라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18 러시아월드컵 8강전에서 스웨덴에 2-0 완승을 거뒀다. 해리 맥과이어의 선제골과 스웨덴의 수비를 흔든 델리 알리의 추가골, 골키퍼 조던 픽퍼드의 눈부신 선방이 잉글랜드를 4강으로 이끌었다. 잉글랜드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4강에 이름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사우스게이트의 ‘전우애’ 리더십

팀의 눈부신 부활 뒤엔 선수들과 함께 진흙구덩이를 뒹군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사진)의 ‘전우애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2016년 6월 ‘감독들의 무덤’으로 통하던 잉글랜드팀 감독대행으로 첫 지휘봉을 잡은 그는 부임하자마자 ‘괴짜’에 가까운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해 6월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출신 앨런 러셀을 ‘공격전담’ 코치로 임명했다. 최전방 공격수들의 ‘전투본능’을 되살리겠다는 명분에서다. 선수들을 군사훈련소에 입소시키기도 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흙탕물에 들어가 극기훈련 시범을 보이는 등 솔선수범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샀다.

팀 전술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프로풋볼(NFL)과 미국프로농구(NBA) 전술을 연구한 것도 파격 행보 중 하나다. 동료의 움직임을 활용해 창의적으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종 스포츠의 장점을 축구에 적극 활용한 것이다.
잉글랜드 4강 이끈 사우스게이트의 '괴짜 리더십'… "배부른 돼지들을 깨우다"
◆‘콩가루 팀’에서 ‘유기체 팀’으로

‘모래알’ 같던 잉글랜드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변해갔다. 팀플레이가 살아나자 우승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을 무패로 통과한 잉글랜드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3승1무를 거둬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의 활약 기대를 키웠다.

예상은 적중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2승1패로 16강에 진출한 잉글랜드는 콜롬비아와의 16강전, 스웨덴과의 8강전 등을 거치며 총 11골을 수확해 4강까지 내달렸다. 이 중 8골이 세트피스 상황(페널티킥 포함)에서 쏟아졌다. 1966년 월드컵 우승 이후 52년 만에 두 번째 우승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이날 크로아티아와 러시아의 8강전에서는 크로아티아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러시아를 4-3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크로아티아는 잉글랜드와 결승행을 다툰다.

강호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각각 제압한 벨기에와 프랑스가 또 다른 조에서 결승행 티켓을 놓고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친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