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동풍이 날려버린 미세먼지
요즘 청명한 하늘을 보면 미세먼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상청은 어제 “쾌적한 공기 확산이 원활해 전국 각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좋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를 동의어 반복이다.

기상청이 이처럼 두루뭉술한 표현을 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 미세먼지 발생원(源)에 대한 신뢰성 있는 분석이 없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대부분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라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국내 발생분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대부분 미세먼지가 심해져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일각에선 미세먼지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상청과 달리 몇몇 방송사와 인터넷에서는 ‘동풍’의 영향으로 미세먼지가 줄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반도 주변 공기 흐름은 주로 ‘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중국 내륙으로부터 흘러오는 공기가 한반도를 지나 일본을 거쳐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게 상례다. 그런데 최근 며칠간 이런 흐름이 반대가 됐고, 이것이 미세먼지를 날려 버렸다는 것이다.

전 세계 대기와 미세먼지 흐름을 실시간 알려주는 사이트인 ‘earth.nullschool.net’을 보면 이런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요 며칠 계속 사할린과 홋카이도에서 불어오는 동풍이 동해를 거쳐 시계방향으로 한반도를 남쪽으로 휘감은 뒤 중국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공기 흐름이 한반도 북서쪽 중국 대륙에서 서풍을 타고 넘어오는 엄청난 미세먼지군(위 사이트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됨)으로부터 한반도를 막아내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대기가 갑자기 청명했던 적은 지난 수년간 몇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한반도 주변 공기 흐름은 예외 없이 서풍에서 동풍으로 바뀌었다. 중국이 ‘미세먼지 주범’이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일 수 있다. 동풍이 불든, 서풍이 불든 국내 발생 미세먼지 양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올초 미세먼지를 줄인다며 사흘간 150억원을 쏟아붓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차량 2부제, 공공기관 주차장 폐쇄 등의 조치도 내놨다. 그런데 환경부 자체 평가에서 이런 대책으로 줄어든 오염물질은 1.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사정이 이렇자 황당한 아이디어도 나온다. 애먼 데 돈 쓰지 말고 서해안을 따라 중국 쪽을 향해 대형 바람개비를 쭉 설치해 미세먼지를 중국 쪽으로 불어버리면 되지 않냐는 우스갯소리다. 미세먼지 해결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베이징대 강연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고 한국은 ‘작은 나라’라며 몸을 낮췄다. 아무리 높은 산일지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 국민 건강을 위해 이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지 않을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