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민연금공단의 최고투자책임자(CIO) 공모 과정에 개입한 사실은 공공기관 인사시스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해당 기관 인사추천위원회가 공모를 거쳐 서류 및 면접심사로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고 주무 부처 장관 승인을 거쳐 임명한다는 규정과 절차는 그야말로 요식 행위였다는 말밖에 안 된다. 더구나 장 실장이 추천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탈락한 뒤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배후가 있다고 폭로하자 청와대는 이를 부인한 데 이어 곽 전 대표의 재반박에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일관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했다.

청와대가 인사 개입은 아니라며 늘어놓은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처음엔 ‘단순 격려’라고 했다가 “장 실장이 전화로 곽 전 대표에게 공모에 지원할 것을 권유한 사실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심지어 “(장 실장 개입에도) 검증에서 탈락했다면 내부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라는 기괴한 해명까지 내놨다. 국민을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지,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청와대가 정부 정책 관철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할 때 협조할 ‘코드 인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혹마저 키우고 있다.

635조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다루는 최고투자책임자 인선이 이런 식이면 다른 공공기관은 보나 마나다. 말이 공모지 청와대 언질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가 가장 중요하다. 청와대가 낙점하지 않으면 공모 절차가 아예 진행되지도 않는다는 게 정설일 정도다. 이게 야당 시절 “낙하산이다, 뭐다”라며 인사 파행을 그토록 비판하던 지금 정부 여당 아래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공공기관 인사의 진면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나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여당이 집권하자마자 공공기관에 갈 당직자를 모집한다는 소문이 돌 때 이미 예고됐던 일인지도 모른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정권이 오히려 적폐를 더 높이 쌓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