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 1년을 앞두고 한 기자간담회에서 “혁신성장 중심에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이 들어 있지만, 이를 주도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며 “하반기에는 실행력에 방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나 과학기술계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기정통부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유에 대해 유 장관이 자기 성찰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과기정통부는 통신요금 인하 문제로 날을 지새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는 여당이 원하는 대로 ‘보편요금제’를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과기정통부가 시장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과기정통부가 가격통제를 하면서 ICT 혁신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ICT 현장에서는 “규제개혁을 숱하게 요구했지만 과기정통부가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풀어 준 게 없다”고 토로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다.

유 장관은 5세대(5G) 이동통신의 세계 첫 상용화를 자랑거리로 내세우지만 일본 총무성은 벌써 5G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국내 통신업체들이 보안 논란이 있는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중국의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한 게 전부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세계 최초 통신서비스를 자랑하기만 했지, 왜 통신장비에선 글로벌 산업으로 키우지 못한 것인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학기술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공공기관장 인선 등을 둘러싼 잡음만 들릴 뿐 “과학기술 정책이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초팽창’이 될 것이라는 내년 정부예산에서 R&D 예산 증가율은 ‘정체’ 내지 ‘감소’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있는데도, 정작 과기정통부에서는 미래 성장동력 예산 ‘후퇴’에 대한 우려의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언론에서 ‘제 역할을 못 하는 부처’를 설문조사할 때마다 과기정통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쌍벽을 이룰 정도다.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지금이라도 과기정통부가 제 역할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