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주택後분양제에 대한 오해와 미신
국토교통부가 최근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을 통해 내놓은 주택 후(後)분양제 로드맵이 논란을 빚고 있다. 로드맵은 2022년까지 공공주택 물량 70%를 후분양으로 공급하고, 민간 주택사업자가 자발적으로 후분양을 시행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공공 의무화, 민간 자율시행이란 ‘투트랙’ 방식”이라고 밝혔지만 건설사들은 “사실상 후분양제 압박”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공공택지 우선공급, 주택도시기금 융자조건 완화 등 주택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각종 혜택을 후분양 업체들에만 인센티브로 제공해서다.

공정률 60%론 부실 못 가려내

정부는 후분양제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품질 확보와 투기 억제를 꼽는다. 소비자가 집을 완공 단계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부실 시공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당첨 후 입주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아 분양권 불법 전매(轉賣)로 인한 투기도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가장 비싼 물건(주택)을 보지도 못하고 사는 선(先)분양제는 후진적인 한국 주택시장의 한 단면”이라며 “주택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후분양제 전면 실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후분양제 효과가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후분양 가이드라인이 되는 시점은 ‘공정률 60%’다. 골조 공사를 막 끝낸 수준이어서 청약자들이 부실 시공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 아파트 하자의 상당수는 내부 공사와 인테리어 등 마감 공정에서 발생한다. 부실 공사는 선분양과 후분양을 떠나서 철저한 감리와 관리 감독으로 막아야 할 문제다.

투기 억제 효과도 제한적이다. 서울·수도권은 대부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있어 입주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금지돼 있다. 불법 전매에 의한 투기 가능성은 공급 방식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정부가 불법 행위를 제대로 단속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선분양제가 건설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선분양제는 계약자가 주택업체에 건설 자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최소한 금리 수준만큼 집값을 할인해서 사는 거래 관행이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2~3년 이후 벌어질 주택시장 리스크를 분담하는 구조다.

공급은 줄고 분양가는 오르고

최악의 경우에도 소비자는 ‘제품 인수’를 못하는 상황을 피한다. 건설사가 부도를 내더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입주와 하자 보수를 책임진다.

후분양제에서는 ‘가격 할인’ 혜택이 없어진다. 건설사는 막대한 토지 구입비와 공사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지금보다 분양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후분양 주택은 분양가 통제를 받지 않아 시세 차익이 건설사 몫이다.

대형 건설사에 비해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 건설사의 사업이 어려워져 공급 물량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공급 부족은 집값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2016년 보고서에서 민간 아파트에 후분양제가 실시되면 분양가는 평균 7% 상승하고, 물량은 연 10만 가구 이상 줄 것으로 전망했다.

선분양제가 한국에서만 성행하는 제도도 아니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 디벨로퍼들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선분양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업 위험을 줄이면서도 막대한 개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는 후분양제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정부가 주택시장 상황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 후분양제를 밀어붙인다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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