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상장을 노리는 해외 바이오기업이 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바이오기업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높은 데다 바이오기업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관심이 뜨겁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적자를 내는 외국 바이오기업도 ‘테슬라 요건’을 활용해 상장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한국 상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싱가포르·베트남 기업 상장 대기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바이오기업 프레스티지 바이오파마가 삼성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고 코스닥시장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 상장을 마칠 계획이다. 상장을 마치면 싱가포르 기업이 국내 증시에 상장한 첫 사례가 된다. 삼성증권은 미국 바이오 기업인 아벨리노랩의 상장 주관도 담당하는 등 해외 기업 상장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레스티지 바이오파마는 바이오 신약 개발사다. 국내에 바이오의약품 제조사인 프레스티지바이오를 관계사로 두고 있다. 내년 안에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과 대장암 치료제인 아바스틴의 바이오시밀러 시판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조 단위일 것으로 예상되는 ‘대어’인 만큼 시장의 관심이 높은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바이오시밀러 1위 기업인 나노젠도 상장 채비에 나섰다. 이르면 내년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의 베트남 법인이 한국 증시에 상장한 적은 있지만 순수 베트남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은 처음이다. 혈전 용해제 제조사인 보난자제약, 의료용품 제조사인 캉푸 등 중국 바이오 기업들도 상장을 준비 중이다.

국내 기업이 투자한 바이오기업과 해외 바이오 법인도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마크로젠은 미국법인을, 제넥신은 미국 관계사인 네오이뮨텍을 국내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다. 부광약품의 덴마크 자회사인 콘테라파마도 연내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를 한 뒤 3년 안에 코스닥에 상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내 증시 바이오기업 ‘몸값’ 높아

해외 바이오기업이 한국 상장을 노리는 것은 국내 바이오기업 밸류에이션이 다른 시장보다 높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의약품지수의 12개월 선행 PER(주가수익비율)은 59.3배로 국내외 주요 제약·바이오 업종지수 가운데 가장 높았다. 미국 S&P 제약지수(14.5배)나 MSCI 유럽제약지수(15.3배), MSCI 일본제약바이오지수(23.1배)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의 바이오기업에 대한 관심이 해외 어느 시장보다 크다”며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이 기업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코스닥 상장을 검토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국거래소가 요건만 맞으면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게 한 ‘테슬라 요건 상장’을 외국 바이오기업에 허용해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월 각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부서에 공문을 보내 적자를 내는 외국 바이오기업이더라도 기술평가를 거치면 테슬라 요건을 활용해 상장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국내 바이오기업과 벤처캐피털이 해외 바이오기업 투자를 늘린 것도 해외 바이오기업 상장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선 해당 기업이 상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수지/이고운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