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99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한 것은 복잡하게 얽힌 기업들의 출자 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대우그룹처럼 한 계열사의 부실이 전체 계열사로 옮겨가는 문제를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지주사의 폐해’를 지적하며 규제 강화 방안을 들고나오자 경제계에서는 “자칫 지주사 체제가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덩어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지주사 등이 다른 기업의 지분 일부나 경영권을 사들일 때 투자 대상 및 지분 소유 비율에 규제가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혁신 기업인 구글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했다. 구글은 핵심 사업부인 안드로이드(투자금 5억달러)와 유튜브(16억5000만달러)도 M&A를 통해 획득했다. 구글은 M&A를 더욱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2015년 8월 지주사인 알파벳을 설립했다.

'투자 족쇄' 없는 구글·알리바바, M&A로 새 먹거리 발굴
미국에선 금융지주회사가 아니더라도 은행을 제외한 금융사를 지배할 수 있다.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었던 제너럴일렉트릭(GE)이 GE캐피털 등 금융계열사를 거느리는 이유다.

한국이 지주사 규제를 벤치마킹한 일본은 2002년 독점금지법을 개정해 지주사에 대한 사전 규제를 모두 없앴다. 중국도 금융업과 제조업의 이종 교배가 활발하다.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을 통해 은행, 증권, 보험, 자산운용업을 하고 있다.

이들 나라와 달리 한국에선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이런 규제 탓에 삼성, 현대자동차, 한화 등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대기업은 지주사 전환을 꺼리고 있다. 장필식 한국벤처투자 팀장은 “각종 규제로 대기업들이 국내보다 해외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벤처 생태계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규제를 피해 미국에서 △오토모티브혁신펀드(3억달러) △카탈리스트펀드(1억달러) △삼성넥스트펀드(1억5000만달러) 등 3개의 스타트업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가 대기업 지주사의 벤처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점에 대해 효과를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대기업 지주사 자금이 유망 스타트업으로 흘러들 수 있지만 해당 기업이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되면 공시 부담이 늘고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아 성장이 막힐 수 있어서다.

좌동욱/김익환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