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복 예스티 대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없으면 기업가로서의 생명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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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제조사 파워테크닉스 설립한 장동복 예스티 대표
냉소 뛰어넘는 도전
대기업도 힘든 반도체 사업
처음 추진때 주위 반응 '싸늘'
예스티에 부담주지 않기 위해
사업초기 개인 자금만 투자
전력반도체 본격 양산
실리콘 대신 실리콘카바이드 활용
기술 난도 높지만 효율 뛰어나
글로벌 전자업체서 벌써 주문
냉소 뛰어넘는 도전
대기업도 힘든 반도체 사업
처음 추진때 주위 반응 '싸늘'
예스티에 부담주지 않기 위해
사업초기 개인 자금만 투자
전력반도체 본격 양산
실리콘 대신 실리콘카바이드 활용
기술 난도 높지만 효율 뛰어나
글로벌 전자업체서 벌써 주문
반도체 장비업체 예스티의 장동복 대표는 올해 초 회사 주식을 담보로 100억원을 빌렸다. “주택담보대출도 아직 다 못 갚았는데…”라며 아내가 짓는 한숨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장 대표는 빌린 돈으로 파워테크닉스라는 회사의 자본금 17억원을 댔다. 실리콘카바이드 소재로 전력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다. 나머지 돈도 상황을 봐가며 추가 출자할 예정이다. 파워테크닉스는 오는 19일부터 전력반도체를 본격적으로 양산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에 이은 네 번째 토종 반도체 제조업체의 탄생이다.
삼성·SK·DB 이은 네 번째 반도체 제조업체
예스티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에서 사용하는 온도 조절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관련 설비 수요가 늘며 2016년 527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504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영업이익도 157억원을 올렸다. 1999년 직원 4명으로 창업한 회사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성공한 사업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장 대표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정은식 파워테크닉스 부사장을 만난 뒤부터다. 당시 정 부사장은 전력반도체 양산을 준비하다가 경영진의 수출 금융사기로 도산한 메이플세미컨덕트라는 회사의 연구진을 이끌고 있었다. 보유한 기술과 연구 인력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력반도체는 각종 전자제품에 전력을 공급하거나 태양광 등을 전력으로 변환하는 반도체다. 높은 전압과 온도를 견뎌야 할 필요가 커지면서 탄소와 규소를 고온에서 결합시킨 실리콘카바이드가 새로운 소재로 떠올랐다. 일반 반도체에 사용되는 실리콘에 비해 10배 높은 강도와 전압을 견딜 수 있는 데다 3배 높은 고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어서다.
별도의 냉각장치가 필요 없어 실리콘카바이드로 전력반도체를 만들면 자동차 부품은 최대 80%, 태양광 인버터는 40%까지 부피를 줄일 수 있다. 미국 CREE, 독일 인피니온 등이 관련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과 태양광 모듈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어 지금 주문해도 1년 뒤에나 제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공급이 달린다.
하지만 강도가 높은 실리콘카바이드를 가공하는 것은 어렵다. 기존 장비로는 웨이퍼를 깎고 구성 물질을 바꾸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속는 셈 치고’ 시제품 생산 비용을 댔다. 경북 포항 나노융합기술원 설비를 임차해 제작한 시제품은 기대 이상의 성능을 나타냈다. 해당 기술을 15년 이상 연구해온 한국전기연구원도 수율과 성능이 높은 수준이라고 인정했다.
2021년 전력반도체 매출 600억원 목표
반도체 제조는 어지간한 대기업도 엄두를 내기 힘든 사업이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이 사재 3500억원을 쏟아부은 DB하이텍이 악전고투 끝에 창업 17년 만에 간신히 흑자 전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장 대표가 파워테크닉스 설립을 추진할 때도 냉소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반도체 제조가 어떤 사업인지 알기는 하나” “주가 띄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대부분이었다.
장 대표는 사업 초기 철저히 개인 자금만 투자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예스티와 주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장 대표의 생각 때문이었다. 예스티는 실제 제품의 상품성과 양산성이 증명되는 이달 말 이후 파워테크닉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행히 실리콘카바이드는 일반 반도체에 비해 설비 투자 등에 훨씬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회로 선폭이 실리콘 반도체 대비 1000배 정도 굵어도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어 미세화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워테크닉스는 1차로 120억원을 제조설비에 투자한다. 990㎡ 규모의 클린룸은 나노융합기술원에서 임차해 사용한다.
실리콘카바이드 전력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해 벌써 여러 고객이 제품 공급을 요청해 왔다. 한 글로벌 전자업체는 TV 신제품에 들어갈 전력반도체 공급을 파워테크닉스와 논의 중이다. 완성차 업체 한 곳도 차량용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내년 5월 준공되는 예스티 평택공장 일부에 파워테크닉스 생산설비를 갖춰 생산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2021년까지 전력반도체에서 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반도체 사업은 변수가 많다. 파워테크닉스의 성패에 따라 지금까지 일궈온 것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 두렵지 않을까. 장 대표는 특유의 쏘아보는 눈빛으로 답했다. “도전을 멈추는 순간 기업가로서의 생명도 멈춥니다. 맨손으로 창업해 이 정도 회사를 일궜으니 설령 큰 고난을 맞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고 만족할 겁니다.”
포항·평택=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장 대표는 빌린 돈으로 파워테크닉스라는 회사의 자본금 17억원을 댔다. 실리콘카바이드 소재로 전력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다. 나머지 돈도 상황을 봐가며 추가 출자할 예정이다. 파워테크닉스는 오는 19일부터 전력반도체를 본격적으로 양산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에 이은 네 번째 토종 반도체 제조업체의 탄생이다.
삼성·SK·DB 이은 네 번째 반도체 제조업체
예스티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에서 사용하는 온도 조절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관련 설비 수요가 늘며 2016년 527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504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영업이익도 157억원을 올렸다. 1999년 직원 4명으로 창업한 회사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성공한 사업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장 대표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정은식 파워테크닉스 부사장을 만난 뒤부터다. 당시 정 부사장은 전력반도체 양산을 준비하다가 경영진의 수출 금융사기로 도산한 메이플세미컨덕트라는 회사의 연구진을 이끌고 있었다. 보유한 기술과 연구 인력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력반도체는 각종 전자제품에 전력을 공급하거나 태양광 등을 전력으로 변환하는 반도체다. 높은 전압과 온도를 견뎌야 할 필요가 커지면서 탄소와 규소를 고온에서 결합시킨 실리콘카바이드가 새로운 소재로 떠올랐다. 일반 반도체에 사용되는 실리콘에 비해 10배 높은 강도와 전압을 견딜 수 있는 데다 3배 높은 고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어서다.
별도의 냉각장치가 필요 없어 실리콘카바이드로 전력반도체를 만들면 자동차 부품은 최대 80%, 태양광 인버터는 40%까지 부피를 줄일 수 있다. 미국 CREE, 독일 인피니온 등이 관련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과 태양광 모듈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어 지금 주문해도 1년 뒤에나 제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공급이 달린다.
하지만 강도가 높은 실리콘카바이드를 가공하는 것은 어렵다. 기존 장비로는 웨이퍼를 깎고 구성 물질을 바꾸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속는 셈 치고’ 시제품 생산 비용을 댔다. 경북 포항 나노융합기술원 설비를 임차해 제작한 시제품은 기대 이상의 성능을 나타냈다. 해당 기술을 15년 이상 연구해온 한국전기연구원도 수율과 성능이 높은 수준이라고 인정했다.
2021년 전력반도체 매출 600억원 목표
반도체 제조는 어지간한 대기업도 엄두를 내기 힘든 사업이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이 사재 3500억원을 쏟아부은 DB하이텍이 악전고투 끝에 창업 17년 만에 간신히 흑자 전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장 대표가 파워테크닉스 설립을 추진할 때도 냉소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반도체 제조가 어떤 사업인지 알기는 하나” “주가 띄우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대부분이었다.
장 대표는 사업 초기 철저히 개인 자금만 투자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예스티와 주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장 대표의 생각 때문이었다. 예스티는 실제 제품의 상품성과 양산성이 증명되는 이달 말 이후 파워테크닉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행히 실리콘카바이드는 일반 반도체에 비해 설비 투자 등에 훨씬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회로 선폭이 실리콘 반도체 대비 1000배 정도 굵어도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어 미세화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워테크닉스는 1차로 120억원을 제조설비에 투자한다. 990㎡ 규모의 클린룸은 나노융합기술원에서 임차해 사용한다.
실리콘카바이드 전력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해 벌써 여러 고객이 제품 공급을 요청해 왔다. 한 글로벌 전자업체는 TV 신제품에 들어갈 전력반도체 공급을 파워테크닉스와 논의 중이다. 완성차 업체 한 곳도 차량용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내년 5월 준공되는 예스티 평택공장 일부에 파워테크닉스 생산설비를 갖춰 생산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2021년까지 전력반도체에서 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반도체 사업은 변수가 많다. 파워테크닉스의 성패에 따라 지금까지 일궈온 것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 두렵지 않을까. 장 대표는 특유의 쏘아보는 눈빛으로 답했다. “도전을 멈추는 순간 기업가로서의 생명도 멈춥니다. 맨손으로 창업해 이 정도 회사를 일궜으니 설령 큰 고난을 맞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고 만족할 겁니다.”
포항·평택=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