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북한의 모욕을 얻었으니, 아주 빈손은 아니다. 북한을 떠날 때 그는 협상이 “생산적”이었다고 평했는데, 그의 일본 도쿄 도착에 맞춰 북한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조폭 같은(gangster-like) 비핵화 요구”를 비난했다.

북한은 이번에 그를 단단히 길들이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가 대통령 친서를 지녔는데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백두산 농장에서 ‘감자와 데이트’를 했다. 그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게 좋아서 실무자가 갈 자리마다 나서니, 북한이 얕잡아본 듯하다.

그래도 북한의 의도적 모욕은 설명하기 어렵다. 존경받을 인물은 아니지만, 그는 그래도 미국 국무장관이다. 어찌 된 일인가?

공산주의자와 협상해 본 사람들의 공통된 충고는 “결코 공산주의자들이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상황에 놓이지 마라”다. 한 번 공산주의자들의 통제 아래 놓이면 누구든 그들의 덫에 걸린다. 그리고 한 번 덫에 걸리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북한을 찾아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한 일은 특히 교훈적이다. 일본과 북한의 첫 정상회담이었지만 일본 대표단은 한나절에 회담을 마쳤다. 심지어 그들은 공식 오찬도 거부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지시에 따라 점심은 일본에서 가져간 오니기리(김 주먹밥)와 엽차를 들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인 납치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사과를 받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그런 성공은 실은 2000년에 북한과 정상회담을 한 한국의 경험을 참고한 데서 나왔다. 일본은 북한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북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썼다. 이 일화는 우리 대통령들의 북한 방문과 정상회담이 어떤 상황에서 이뤄졌는지를 괴롭게 보여준다.

한국전쟁의 휴전 협상에서 국제연합군을 대표한 터너 조이 제독은 자유주의 진영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맨 처음,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협상한 사람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늘 회담장을 물리적으로 통제하려 한다고 회고록에서 지적했다. 원래 전황이 불리한 공산군이 휴전을 제안했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점령한 개성으로 오라고 통보했다. 국제연합군 선발대가 개성에 도착하자 그들은 무장 병력을 동원해 협박하고, 당황한 대표들의 모습을 촬영해 선전에 썼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국제연합군의 주장으로 중립적인 판문점에서 회담이 이어졌다.

얄타회담에서 미국과 영국 대표단이 묵은 숙소는 러시아 비밀경찰(NKVD)이 몰래 엿듣고 촬영했다. 아침마다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 사람들이 여러 논점에 대해 보이는 반응들을 자세히 살핀 뒤 회담에 임했다.

미국 숙소와 영국 숙소 사이엔 러시아 숙소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한편이 돼야 할 미국과 영국은 협의할 길이 없었다. 이런 행태를 북한이 본받았다. 예비회담이 열리는 동안, 고이즈미 총리는 멀리 떨어진 방에서 기다려야 했다. 예비회담이 끝날 때가 돼서야 북한은 일본인 피랍자의 다수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이 중요한 얘기를 총리에게 빨리 알리려고 서두른 일본 외교관은 총리 앞에서 양탄자에 발이 걸려 나뒹굴었다. 정상회담 시간이 다 됐으므로, 일본 측은 대응책을 협의하지 못하고 정상회담에 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물리적 통제 아래 밤을 보냈다는 사실은 음산하게 다가온다. 실제로 그는 “조폭 같다”는 북한의 모욕적 표현에 대해 겨우 “우리가 조폭이라면, 온 세계가 조폭”이라는 절름발이 변명을 내놓았다. 조폭은 북한이고 미국이 경찰이라는 사실조차 지적하지 못했다.

둘러보면, 자유세계에서 공산주의자의 속성과 행태에 관해 우리만큼 잘 아는 사람들은 없다. 1920년대 초엽 “공산주의 러시아는 우리의 영원한 조국”이라고 외친 공산주의자들이 레닌에게 받은 거금으로 상하이 임시정부를 무너뜨리려 시도한 이래, 대한민국은 줄곧 공산주의자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자라났다. 거의 100년 동안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하면서 얻은 지식을 우방들에 전수하는 것은 우리 의무다. “부동산 거래를 잘 해서 큰돈을 벌었는데 외교 교섭이 별거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유세계의 지도자가 된 상황에선 더욱 중요해진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