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건설현장 근무 중 사고가 났을 때 국내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산재보험법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국내 본사에서 급여를 받더라도 현장소장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면 해외파견자, 즉 해외법인 소속이기 때문에 산재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현행법상 해외파견 근로자는 국내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피해자와 유족들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어 해외근무자 산재 인정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파견 근로자, 산재보험 대상 아냐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유진현)는 건설사 해외파견 근로자로 일하다 사망한 이모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국내서 월급 받는 해외 파견 근로자 산재보험 적용 여부는
D건설 중동 발전소 건설현장 반장이던 이씨는 2013년 11월 근무 도중 쓰러졌다. 뇌수막염 진단을 받고 프랑스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그해 12월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배우자 원모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청구를 거부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역시 이듬해 같은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자 원씨는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산재보험법은 국내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단순히 근로 장소가 국외에 있는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국내 사업에 소속해 사용자의 지휘에 따라 근무하는 것이라면 산재보험법 적용 대상”이라는 게 대법원 판시다. 이에 따라 국내 사업장에 속해 있으면서 잠시 해외에서 업무를 보는 ‘해외출장 근로자’는 보상 대상이다. 반면 ‘해외파견 근로자’는 고용주의 사전 신청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그 외 민간보험에 가입하거나 한국과 사회보장협약이 체결된 국가에 한해 현지의 산재보험 적용을 받도록 돼 있다.

◆파견이냐, 출장이냐 구분 기준은

법원은 이 사건에서 이씨가 산재법 적용 대상이 아닌, 해외파견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씨의 급여를 국내 본사에서 직접 지급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해외 사업장 취업규칙을 따로 두고 있는 점, 근로계약서에 대표이사가 아니라 현장소장의 서명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해외파견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해외파견과 출장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 불승인 처분을 내리면 재심위원회를 거쳐 1심 판단을 받기까지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2~3년이 걸린다”며 “체류기간, 취업규칙 적용 등의 사전 기준을 마련해 놓으면 불필요한 법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업종별·지역별로 파견근로 파악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해외 사업장 수는 4591곳으로 4년 전인 2013년에 비해 41%, 근로자 수는 3만6678명으로 46% 증가했다. 하지만 산재 인정은 여전히 좁은 문이다. 지난해 해외파견 업종 재해율(전체 근로자 대비 재해자 수)은 0.12%로 전체 재해율 0.48%에 한참 못 미쳤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