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제도는 은퇴 후 노후자금을 매달 지급받아 생계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한국 중산층의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 퇴직 후 그간 쌓인 자금을 한 번에 받는다. 퇴직 전에도 집을 사거나 전세금을 마련하려고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하기 일쑤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받기로 결정한 가입자(55세 이상)는 1.9%에 불과했다. 퇴직자는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을지 연금으로 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데 절대다수의 가입자가 한 번에 퇴직금을 받아간다는 얘기다. 연금 형태로 받으면 소득세를 감면 받을 수 있지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적립금이 적을수록 한 번에 인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퇴직연금을 한 번에 받겠다는 근로자의 평균 적립금은 1649만원으로, 연금으로 받겠다는 근로자의 전체 평균인 2억3000만원에 크게 못 미쳤다.

퇴직연금을 중간에 깨서 사용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한 근로자는 2만6323명으로 집계됐다. 퇴직연금 전체 가입자 583만4000명 중에선 일부지만 2016년 연간 중도인출자(4만91명)의 65.7%에 해당하는 가입자가 지난해 상반기 빠져나간 셈이다. 하반기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늘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퇴직연금을 중도에 깬 근로자 10명 중 6명은 부동산 구입(39.6%)이나 전세자금 마련(22.2%)에 돈을 썼다. 노후 생활자금을 부동산 투자나 주거 비용으로 썼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가계자산이 부동산에 묶인 중산층일수록 퇴직연금을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출식연금펀드(RIF) 등의 상품을 활용해 은퇴 후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RIF는 은퇴 이전에 모아둔 자산을 펀드로 운용하면서 매달 정기적으로 수익을 돌려받는 펀드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