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스스로 자신의 퇴직금 운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퇴직연금 제도는 ‘무용지물’이다. 미국 호주 등 연금관리 선진국에선 근로자들이 노후 자금을 방치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갖추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와 디폴트 옵션 제도(자동투자제도)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도입하고 있는 퇴직연금은 계약형 제도다. 기업이나 근로자가 각각 은행 보험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운용하는 구조다. 하지만 선진 연금시장에서의 퇴직연금은 기금형이다. 기금형 제도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아니라 전문 위탁기관과 계약을 맺는 구조다. 운용에 애로를 겪는 기업들이 공동기금(연합형 구조)을 구성해 연금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 업종별로 금융인 퇴직연금, 또는 사업장별로 OO회사 퇴직연금 등을 조성해 굴리는 방식이다. 별도의 기금 운용 책임자가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처럼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효율적으로 자산을 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똑같은 시장 상황에서 국민연금(연 7.28%)과 퇴직연금(1.88%)의 수익률 격차는 5.4%포인트에 달했다. 기금형 제도가 도입돼도 확정기여(DC)형 가입자는 확정급여(DB)형과 달리 직접 운용지시를 해야 한다.

DC형에 가입한 근로자의 수익률을 높이려면 디폴트 옵션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는 게 연금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디폴트 옵션은 DC형 가입자가 일정 기간 별도 지시가 없으면 사업자가 퇴직연금 자산을 알아서 굴려주는 제도다. 선진 연금시장에선 디폴트 옵션 제도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이 너무 높거나 아예 운용하지 않는 근로자를 위해서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4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진 않다. 기금형 퇴직연금과 디폴트 옵션 제도를 도입하려면 사회적 합의와 함께 제대로 된 감독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금형 퇴직연금 전 단계로 DB형 기업들에 적립금운용보고서(IPS)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퇴직연금의 목표수익률과 운용방식 등을 명시해 운용보고서를 작성하자는 것이다. 운용 결정을 절차화하고 투명화해 기업의 퇴직연금 운용담당자 개인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조진형/나수지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