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당신의 케렌시아는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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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 서울교통공사 사장 taehokim@seoulmetro.co.kr >
![[한경에세이] 당신의 케렌시아는 어디입니까](https://img.hankyung.com/photo/201807/07.17175003.1.jpg)
여름휴가뿐만 아니라 치열한 일상에서도 쉼표는 필요하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수면카페, 책맥카페는 다양한 생활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추스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투우장에서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케렌시아’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케렌시아가 필요하다.
필자는 종종 멍 때리기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멍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나만의 케렌시아가 된다. 낭만주의 실내악 거장으로 꼽히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케렌시아는 스위스 툰 호수였다. 그는 휴식을 위해 1886년부터 3년간 매년 여름을 스위스 툰 호수 근처 마을에서 지내며 많은 실내악곡을 완성했다. 아르키메데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찾았던 목욕탕에서 불현듯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는 ‘유레카’라고 외쳤다는 일화로 익히 알려져 있다. 독일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산책길은 괴테, 헤겔, 하이데거 등 당대 유명한 철학자들의 케렌시아로 남아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케렌시아를 찾을 여유조차 없다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디지털 케렌시아’가 돼 준다.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이나 동영상을 감상하는 사람, 게임을 즐기는 사람, 전자책을 읽는 사람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달콤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에 몰두한 채 나만의 케렌시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 그 소중함과 간절함을 짐작하게 된다.
지하철은 디지털 케렌시아로 떠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언제든지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으니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무료로 접속할 수 있는 와이파이는 매력적인 티켓이다. 내년부터 서울 지하철 1~9호선에 지금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의 무료 와이파이가 도입될 예정이다. 운행 중인 지하철에서 동시에 최대 550여 명이 끊김 없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일상에 지친 이들이 지하철을 출발역 삼아 더 자주, 더 편안하게 휴식과 위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