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라고 다 인기가 없는 게 아니다. 요즘처럼 증시 상황이 좋지 않아도 불티나게 팔리는 상품이 있다. 바로 ‘헤지펀드’다. 헤지펀드는 코스피지수를 벤치마크로 삼지 않는다.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절대수익을 추구한다. 공매도를 활용하기도 하고 코스닥 전환사채(CB)에 투자하기도 한다. 운용 규제를 받지 않는다. 올해 수익률이 10%를 넘는 헤지펀드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중산층에는 ‘그림의 떡’이다. 헤지펀드는 49인 이하로만 투자자 모집이 가능한 사모펀드다. 최소 가입금액도 1억원이다. 갈수록 공모펀드가 외면받는 가운데 사모펀드 시장만 빠르게 커지고 있다. 능력있는 스타 펀드매니저도 잇따라 사모펀드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국민 재산 증식에 기여해야 할 펀드시장이 자산가만 돈을 불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돼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인재 몰리는 헤지펀드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은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다. 금융당국이 2015년 전문 사모펀드 운용회사 설립 요건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대폭 완화하면서다. 내로라하는 투자 전문가가 속속 운용사를 차리기 시작하면서 고액자산가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헤지펀드 시장 규모는 17일 현재 21조5670억원에 이른다. 1년 전 10조원을 넘어서 단숨에 두 배로 불어났다. 헤지펀드 수익률이 이를 말해준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가 6.87% 떨어진 와중에도 평균 1.81% 수익을 냈다. 공모 펀드는 같은 기간 6.65% 손실을 보고 있다. 타임폴리오 라임자산운용 등이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올해 10~30%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다.

헤지펀드는 고액자산가의 ‘애장품’으로 자리잡았다. 잘나가는 헤지펀드 운용사가 신규 상품을 내놓으면 반나절 만에 판매가 완료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산층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투자금액이 최소 1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타임폴리오 같은 곳은 10억원 이상이다.

돈이 몰리는 곳엔 인재도 몰린다. 공모펀드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던 펀드 매니저들이 속속 헤지펀드로 이직하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간판 상품인 ‘한국투자네이게이터펀드’를 맡아 1조원대 규모로 키운 박현준 매니저는 작년 6월 헤지펀드 운용사인 씨앗자산운용을 차렸다. 중소형주 펀드의 스타 매니저로 유명한 홍정모 매니저도 NH-아문디자산운용을 떠나 헤지펀드 운용사 라임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헤지펀드는 운용에 제약이 없고 파격적인 성과급을 보장해준다”며 “대형 자산운용사에서도 능력 있는 매니저는 헤지펀드로 이직할 기회만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이 주로 투자하는 공모펀드는 수익률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규제의 역설’에 빠진 공모펀드

헤지펀드는 사모펀드의 일부분이다. 기관투자가 및 개인 ‘큰손’의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사모펀드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 순자산 규모는 6월 말 기준 301조3627억원으로, 공모펀드(236조3854억원)를 크게 앞서고 있다. 2016년 200조원을 넘어서 공모펀드를 처음 앞지른 뒤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부동산, 항공기 등에 투자하는 대체투자가 각광받으면서 사모펀드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며 “갈수록 투자자 보호가 강조되다 보니 운용사들이 규제가 많은 공모펀드 설정을 꺼리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모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면 공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모 주식펀드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운용 규제에 묶여 주식 비중을 줄일 수도 없다. 한 종목에 자산총액의 10% 비율을 초과해 투자할 수 없고, 증권뿐 아니라 채권도 한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놨다. ‘투자자 보호’라는 명목을 내걸었지만 지나친 규제가 아예 투자자를 떠나게 하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종목당 투자비율 제한만 완화해줘도 운용이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헤지펀드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시황과 상관없이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다. 전문사모 운용회사가 주로 운용한다. 펀드당 49명 이하만 가입할 수 있고, 최소 투자금액은 1억원 이상이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