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사는 수수료 짭짤한 단기상품만 앞세워
펀드업계에서 은행이나 증권사 등 판매사는 ‘갑(甲)’으로 불린다. 아무리 좋은 상품을 개발해도 판매사들이 팔아주지 않으면 ‘을(乙)’인 자산운용사들은 속수무책이다. 판매사들이 당장 수수료 수입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신탁이나 주가연계증권(ELS) 위주로 판매 경쟁을 벌이는 것도 금융소비자들이 중장기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펀드 상품 시장이 위축된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고위험 단기 상품 판매경쟁이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은행들은 지난해 약 10조2000억원어치(잔액 기준)의 ETF 신탁 상품을 팔았다. 전년 같은 기간(4조6000억원)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ETF 신탁이란 증시에 상장된 ETF를 은행의 신탁에 편입한 상품이다.

은행들이 ETF 신탁 판매에 적극적인 이유는 수수료 수입(신탁보수)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ETF 신탁 상품 수수료는 투자금의 약 1%다.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투자자가 직접 매매할 때의 수수료 약 0.014%, 증권사 지점을 통한 위탁매매 수수료 0.5%보다 높다. 은행들은 매매 시점 등에 대한 조언 등을 해주기 때문에 수수료가 높은 게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증권사 창구를 통한 위탁매매와 큰 차이 없이 수수료만 높다는 비판도 있다.

판매사들은 1% 안팎의 수수료를 바로 뗄 수 있는 ELS 판매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고위험 상품이지만 리스크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포장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2015년 발행됐던 ELS는 기초자산으로 쓰인 홍콩H지수가 이듬해 급락, 대규모 손실구간 진입 사태가 벌어져 판매직원들이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