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의 횡포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7일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후폭풍의 해법으로 내놓은 말이다. 자영업자의 임금 지급 능력을 높이려면 가맹본부(기업)와 건물주의 ‘부당한 이익’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중소상공인과 저임금 노동자 간 ‘을(乙)의 전쟁’으로 번진 최저임금 인상 논란을 ‘갑의 횡포’라는 논리로 잠재우려는 모양새다.
'최저임금 반발' 당황… "甲의 횡포 탓" 몰아가는 민주당·정부
◆전면 공세로 전환한 정부와 여당

당정은 이날 입이라도 맞춘 듯 일제히 최저임금 문제의 본질은 갑의 횡포에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홍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을과 을의 갈등으로 비치고 있지만, 본질은 편의점주 등 가맹점주가 부담해야 하는 불공정 계약과 과도한 임대료 인상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가맹본부의 불공정 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공정거래위원회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전날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는 근본 원인으로 “고삐 풀린 상가 임대료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계약”을 지목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영업자들이 진짜 힘든 이유를 모르나. 힘들고 서러운 사람들 간의 반목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제거와 상가 임대료 인하, 카드 수수료 제로화를 요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약자끼리 다투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가진 사람들’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 총리는 “경제의 모든 잘못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우리 경제는 노동자의 저임금과 혹사, 소상공인의 희생에 의지해 지탱하는 체제를 더는 지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도현 시인의 시구를 인용해 “너희들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나”며 “대기업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한 번씩 물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정 고위인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보조를 맞춘 발언을 내놓고 있다”며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 공방 치열할 듯

민주당은 갑의 횡포를 앞세워 관련 입법을 위한 공세 수위도 높여가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되면 조속한 처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와 상관없이 가맹본부가 이익을 얻는 계약구조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편의점의 경우 가맹본부가 가져가는 수수료율은 35%가량이다. 수수료율 상한선 설정이나 가맹사업자에 대한 최저수익보장제 도입이 개정안에 담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현행 5년인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한을 10년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쟁점 법안 중 하나다. 제윤경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했지만 김진태,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의 반대로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 진영의 입법연대가 이뤄지면 법안 통과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둔 야당 의원들로선 갑의 횡포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당의 이 같은 전략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노동경제학 전공 교수는 “최저임금은 명목임금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할 때 교섭능력이 없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최저임금을 통해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득불균형 해소는 저소득층 지원 등 선택적 복지를 통해 해결해야지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했다간 ‘풍선효과’와 같은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경제학자는 “정부의 개입이 자칫 사유재산권의 과도한 침해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