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미 정치권과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을 부정하고,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한 미 정보기관을 비난한 데 대해 ‘미국민에 대한 모독’ ‘국가적 수치, 망신’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관련 질문에 “댄 코츠(미국 국가정보국 국장) 등이 ‘러시아 소행’이라고 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아니라고 말했다”며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왜 개입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미 대선 개입 의혹) 주장은 터무니없고,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 데 동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조사는 재앙이었다”며 미 정보·사법당국을 폄하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 개입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기를 희망했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았다.

현지에서 생방송을 하던 앤더슨 쿠퍼 CNN 앵커는 “여러분은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 가운데 하나를 지켜봤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같은 방송사 앵커 존 킹도 이번 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의 ‘항복 회담’이라고 혹평했다. 워싱턴포스트도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진정한 외교적 승리를 안겼다”고 비꽜다.

미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역사상 이처럼 미국의 적을 옹호한 대통령은 없었다”며 정상회담을 준비한 백악관 안보팀의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우리 선거에 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들은 여전히 미국과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해치려 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중진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은 “미국 대통령으로선 가장 수치스러운 실적이며 비극적 실수”라고 비난했다.

이번 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X파일’ 의혹까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업인 시절인 2013년 모스크바에서 매춘부와 성관계를 가졌고 이 영상을 러시아 당국이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러시아가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