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관계 악화일로 속 日·中·인도 등과 자유무역협정 논의
호주·뉴질랜드·인도네시아·남미공동시장과도 통상협상 진행 중
"개방무역에 美 필요없다는 뜻" 해석…"美시장 대체는 못해" 한계론도
"우리가 적?"…'트럼프 몽니'에 뿔난 EU, 아시아로 눈 돌린다
"유럽연합(EU)은 적이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국방비를 즉각 증액하지 않으면 미국은 국방 문제에서 단독행동을 할 수 있다" "EU가 미국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유럽산 자동차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유럽을 상대로 파상 공세를 펴면서 내놓은 발언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안보와 경제 양쪽 면에서 굳건한 '동맹' 관계를 맺어온 미국과 유럽 관계가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유럽연합이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친구들을 찾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도쿄에서 EU가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연대협정(EPA·EU측 명칭 경제동반자협정)을 공식 체결한 것이 상징적인 장면이다.

협정이 발효되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 무역총액의 40%를 차지하며 6억 명의 인구가 속한 세계 최대급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가 적?"…'트럼프 몽니'에 뿔난 EU, 아시아로 눈 돌린다
EU와 미국은 2013년부터 자동차와 의약품 등에 대한 무관세 등 통상 관련 논의를 진행해왔지만,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말기부터 답보상태였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기존에 진행 중인 협상이 본격적으로 타격을 받자, EU는 이 때부터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협정을 타결하려는 노력을 집중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위협을 가하는 동안 EU는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 논의를 마무리했고, 지난해 말부터 이 협정이 발효된 상태다.

멕시코와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을 더 발전시킨다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와의 무역협정 합의도 마지막 단계를 향해 가고 있다.

이밖에도 호주, 칠레,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튀니지, 그리고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와도 협상이 진행 중이고, 인도와는 2013년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을 다시 시작했다.

EU는 심지어 미국과 첨예한 무역전쟁 중인 중국과도 자유무역 협상을 진행 중이다.

다만 미국이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관세로 위협하는 것과는 달리 EU는 중국투자 기업들이 중국 측 파트너들과 합작을 요구받지 않고 자신들의 사업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중국내 투자에 대한 더 많은 지배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전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EU의 외교적 공세는 '개방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필요없다'는 개념에 들어맞는다"고 평가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일본과 EPA 체결 후 "국제 정치에서 어둠이 커져만 가는 가운데 나온 한 줄기 빛"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보호무역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견제하는 의미도 있다고 뜻이다.

이와 같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EU는 최소한 미국과 무역분쟁으로 인한충격을 줄이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이 다변화하더라도 미국이 EU의 최대 교역 파트너 자리를 유지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발 무역전쟁의 피해를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독일 베렌베르크 은행의 홀거 슈미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유일한 거대시장"이라며 "다른 (국가들과의 교역) 합의들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인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야기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슈미딩은 이어 "EU가 (다른 국가들과) 일련의 무역협정 협상을 타결한다 하더라도 아마도 미국 시장을 상대로 한 교역규모의 3분의 1 정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 클로드 융커 위원장이 오는 25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문제 해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이같은 현실을감안한 EU의 '투 트랙'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