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아트단지 조성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는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
강화도 아트단지 조성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는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
1924년 서울 통인동에서 가구점을 개업하고 1960년 인사동 골동품 전문점 ‘통인가게’로 재창업한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문화재의 중요성을 배웠다. ‘문화재는 바로 그 민족, 그 국민의 얼굴’이라 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1970년대 중반 스물넷의 나이에 가게를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기대이기도 해서 미술관처럼 만들고 싶었다. ‘통인미술’이란 도록을 펴내고 화각, 경대, 갓통, 벼루, 표주박 등 전문분야별 전시회도 열었다. 1974년 가게를 찾은 데이비드 록펠러 미국 체이스맨해튼은행 총재의 권유로 물류사업(통인익스프레스)에 진출했다. 회사를 통인인터내셔날과 21개 자회사를 거느린 연매출 8000억원대의 세계적 물류회사로 키웠다. 어느 정도 사업이 자리 잡자 젊은 시절 못다 한 미술사업에 틈나는 대로 매달렸다. 미술 애호가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72)의 이야기다.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아 통인가게(통인화랑, 통인옥션갤러리)를 운영하는 김 회장은 골동품을 판매하고 미술품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 강화도에 약 200억원을 들여 2000㎡ 규모의 10개 미술관(박물관)을 세우는 10개년 아트단지 조성 프로젝트다. 인천시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아 오는 10월 착공한다. 고려산 자락 일대에 들어설 미술관은 지상 2층 규모로 ‘박물관 아래 절집’, ‘미술관 속 예배당’, 통인현대도자박물관, 청자박물관, 섬유박물관 등으로 구성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거대한 박물관을 만들기보다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는 작은 전시공간을 조성하는 게 목적이다.
강화도에 200억대 아트단지 조성… "미술은 사업의 자양분"
김 회장은 “문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초 사업상 만난 도요타 계열사 호시카와 사장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호시카와 사장과 함께 강화도에 간 적이 있어요. 고려궁터는 물론 오래된 사찰 주변이 우리의 얼굴을 보여주는 문화와는 거리가 있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강화도에 스토리가 있는 미술관 등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고서화 도자기, 현대미술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다. 그동안 수집한 그림과 도자기, 고서화만도 4만여 점에 달한다. 그는 “국내 미술이 발전하기 위해선 작가, 화상, 소장가, 전시공간(미술관)이 자동차의 네 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며 “지금은 네 바퀴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역량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인사동에 내미는 명함의 직함은 회장이 아니라 통인가게 ‘주인’이다. 부친으로부터 “네가 이제 통인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갑작스레 듣고 통인가게를 물려받게 된 그는 그때부터 주인이 돼 힘들어하는 작가들의 아지트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해외 바이어들에게 인정받는 국내 골동품을 소개하고 인사동을 대한민국의 전통문화 브랜드로 높이는 데 앞장섰다. 그런 고집은 총 300회의 전시회로 이어졌다. 한국화가 남농 허건을 비롯해 현대도예가 윤광조, 단색화가 박서보, 김구림, 김기린, 이동엽 등 유명 미술가 300여 명이 통인화랑을 거쳐갔다. 최근에는 여기서 다양한 문화행사도 연다. 테너 이동환이 단골로 출연하는 갈라 콘서트 ‘통인오페라’를 100회 가까이 열었고, ‘조선풍류감상’이라고 해서 판소리 공연도 중간중간 열고 있다.

김 회장은 “화랑과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영의 가치를 배웠다”고 했다. 자신을 논에 물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살포’처럼 생각하며 컬렉터와 미술사업에 충실했다. 남보다 먼저 작가의 작품이나 손때 묻은 고미술을 접하는 만큼 보는 순간 ‘전율’을 느끼지 못하면 예술성과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게 그의 아트경영 원칙이다. 이런 문화경영은 큰 사업을 일구는 데 자양분이 됐다. 그가 고미술상에서 시작해 국내외 운송업인 통인인터내셔날과 통인익스프레스를 세우고 서류 보관 창고·파쇄·청소업까지 거침없이 확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