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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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미래학자 허먼 칸 박사(1922~1983)를 만났다. 배고픈 사람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박 대통령은 쌀 개량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칸 박사는 “농촌 인력을 농사일에서 해방시키라”고 답했다. 공장을 지어 공산품을 생산하게 하고 그것을 수출해 쌀을 사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에너지원 확보와 국토 개발, 신기술 도입과 중화학·전력·수송·항만 확충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칸 박사와의 만남은 박 대통령이 산업 경제 구조의 밑그림을 그리고 한국을 수출 중심 국가로 키워가는 데 일조했다.

[책마을] 불확실한 국가 미래 당장 바꿔낼 지렛대는 기술과 경제
《미래 쇼크》 《제3의 물결》의 저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1년 김 대통령에게 ‘위기를 넘어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에는 지식 기반 경제로의 전환, 정보인프라를 이용한 사회 혁신, 바이오 정보기술 융합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김 대통령은 그가 제시하는 미래 정보화 사회 비전에 큰 인상을 받았다.

신간 《세상의 미래》를 쓴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및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계를 그리는 것’과도 같은 미래학의 영향을 세계적인 미래학자와 두 대통령 간 만남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꼽는 미래 예측 요소 일곱 가지는 ‘STEPPER’다. 사회(Society), 기술(Technology), 환경(Environment), 인구(Population), 정치(Politics), 경제(Economy), 자원(Resource)의 첫 글자다. 그중 사회와 환경, 인구와 자원은 변화의 속도가 늦고 정치는 발전이 더디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결국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국가의 전진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과 경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인구 문제다. 인구수가 국가 생산력을 좌우하고 인구 분포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경제구조가 바뀔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대로 가면 100년 후 한국 인구는 현재의 반토막 수준이 될 것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예측이 나올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1955년 6.33명이던 한국의 출산율이 인구 대체 수준(인구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인 2.06명에 이른 것은 1983년이었다. 그럼에도 1962년 시작한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은 1996년이 돼서야 폐지됐다. 출산율은 이미 1.57명까지 떨어진 뒤였다. 저자는 “근시안적인 미래에 시선을 고정시킨 산아제한 정책이 몰고 온 파장”이라며 “인구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 자는 1970년대 후반에 산아제한 정책을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지 고민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인구문제 해결 방안은 프랑스의 결혼 출산 장려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프랑스는 정식 결혼 외에 동거, 계약 결혼도 모두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한다. 아이들도 차별 없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도우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3세 이전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되 3년 안에 동생이 태어나면 세 배의 수당을 준다. 저자는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배려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통일된 한국의 미래를 그린 마지막 장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요즘 같은 분위기로 남북한 협상이 잘 되고 30년간 평화체제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쌓아간다면 통일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첫 10년(2018~2027년)은 자유로운 상호 방문, 두 번째 10년(2028~2037년)은 경제 공동체로의 진전, 마지막 10년(2038~2048년)은 ‘1국가 2체제’로의 연합 가능성을 제시한다. 통일 한국은 젊은 경제인구 증가로 활력을 얻고 자원 빈국에서 자원 부국으로 탈바꿈하며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외국 기업의 투자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통일 국가의 공통 화폐로 ‘K’라는 이름의 암호화폐도 제안한다.

하지만 ‘남북의 경제력이 비슷해지고 추가 부담 없이 통일이 가능한 시기’라고 제시한 2048년이라는 통일 시점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통일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통일 이후에 대해서도 밝은 면만 부각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양극화 심화와 사회 혼란, 문화 갈등 등 다른 한편에서 우려하는 부작용은 언급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다룬 앞장에서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근거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다.

깊이 있는 분석과 치밀한 논증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다만 최근의 이슈들을 돌아보고 생각할 거리는 충분히 던져준다. 미래학 교양서로는 읽을 만하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