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슬로건이 그림처럼 떠올라야 강력한 브랜드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가 1960년대 미국에 진출했을 때 초기 광고는 모든 장점을 열거하는 식이었다. 고급스러움, 주행성능, 연비 등 모든 장점을 어필했지만 10여 년간 판매량은 바닥이었고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1975년 BMW는 ‘최고의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새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슬로건은 뒤처졌던 BMW를 선도 브랜드에 올려놨고, 이후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고급 자동차가 됐다.

2010년 BMW는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주행’ 대신 ‘즐거움(joy)’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다소 추상적인 새 캠페인은 브랜드 이미지에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를 낳았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사인 메르세데스벤츠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벤츠는 9년 연속 매출이 증가한 데 비해 BMW는 5년 연속 벤츠를 뒤쫓는 구도가 돼버렸다.

성공한 기업은 자신들만의 확고한 비즈니스 개념을 갖고 있다. 그것을 단 한 줄의 명쾌한 ‘슬로건’으로 내건다. 이는 기업 전략이 바뀌지 않도록 언어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기업이 초심을 잃고, 핵심보다 주변만 맴돌며 소비자의 관심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미국의 마케팅 전략가인 로라 리스는 《소비자를 사로잡는 슬로건》에서 기업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브랜드의 핵심 콘셉트를 기억할 만한 슬로건으로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효과적인 슬로건은 먼저 들리는 ‘소리’를 고려해 만들어야 하고, 추상적이기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나이키의 슬로건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은 구어체로 구성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해산물 레스토랑 체인 ‘레드 랍스터’는 ‘레드 시푸드’보다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저자는 각운, 두운, 반복, 대조법, 중의법이라는 ‘슬로건을 만드는 다섯 가지 기법’을 소개한다. 각운을 활용한 광고 캠페인으로 유명한 것은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의 ‘기억하는 12월(December to remember)’이다. 연말 특별할인행사를 알리는 광고로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브랜드 두운을 업종명과 일치시키면 제품의 속성을 알리는 데 효과적이다. 맥주 버드와이저(Beer Budweiser), 크루즈 카니발(Cruises Carnival), 크레용 크레욜라(Crayons Crayola)는 해당 분야의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슬로건을 만드는 것은 전쟁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머지 절반은 고객의 머릿속에 슬로건을 자리잡게 하는 시각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코카콜라의 병은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상쾌한 그 맛’이라는 슬로건을 뇌리에 남긴다. 카우보이는 흡연자의 머릿속에 말보로 담배의 ‘남성성’을 새긴다. 저자는 《시장을 움직이는 비주얼 해머》에서 소비자의 마음에 언어적인 못을 망치질하는 시각적 장치를 분석한다. BMW의 ‘주행성능’이 못이라면 구불구불한 길을 질주하는 자동차 영상은 망치다.

비주얼 해머는 단순함과 독특함이 조화를 이룰 때 빨리 인식될 수 있다. 벤츠의 트레이드마크는 원래 복잡했지만 ‘세 꼭지의 별’로 단순화한 이후 ‘품격’이라는 단어를 고객의 마음에 심었다. 빨대가 꽂힌 오렌지는 주스 브랜드 트로피카나의 신선한 이미지를 그대로 전한다. 맥도날드는 ‘황금색 아치’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머리글자를 상징한 문장 ‘M’을 강조했다.

색깔은 효과적인 비주얼 해머가 될 수 있지만 차별화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때로는 평범하지 않은 색으로 칠해 효과를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전자제품의 선은 검은색이다. 애플은 MP3플레이어 아이팟의 이어폰 줄을 흰색으로 칠해 고정관념을 깼다. 흰색 이어폰 줄은 전자기기 작동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친구들에게 가짜가 아니라 진짜 아이팟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려준다. 비주얼과 언어의 적절한 조합은 강력한 브랜드를 만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