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들이대는 '직권남용' 혐의… 얼어붙은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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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 법리적용 급증
前정부 지시 받고 일했다고…
적폐 수사 '단골 메뉴'로 등장
채용비리·사법행정권 사태까지
올 상반기만 고소·고발 2468명
"걸려고 마음 먹으면 걸리는 죄"
개념 모호하고 입증 어려운데…
"요즘 법리 지나치게 넓게 적용"
공무원들 '복지부동' 우려 커져
다음 정권서 악순환 반복될수도
前정부 지시 받고 일했다고…
적폐 수사 '단골 메뉴'로 등장
채용비리·사법행정권 사태까지
올 상반기만 고소·고발 2468명
"걸려고 마음 먹으면 걸리는 죄"
개념 모호하고 입증 어려운데…
"요즘 법리 지나치게 넓게 적용"
공무원들 '복지부동' 우려 커져
다음 정권서 악순환 반복될수도
“열심히 의욕을 갖고 일하면 뭐하나요. 직권남용으로 오해받기 십상인데…. 다음 정권에서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최대한 조심해야죠.”
정부 고위간부는 20일 “사실상 걸려고 마음만 먹으면 모두 걸리는 것이 직권남용죄”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직권남용죄로 고소·고발당하는 전·현직 공무원이 급증하면서 공직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 고소·고발은 올해 상반기 2468명으로 전년 동기(1394명)의 1.7배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고소·고발된 공무원은 2014년 연간 접수 건수(1262명)의 2배에 달했다. 관련 고소·고발은 2015년 1402명에서 2016년 2059명, 2017년 3282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현 정부 들어 고소·고발 급증
직권남용죄가 급증한 배경엔 ‘적폐수사’가 있다. 직권남용죄는 수사 과정에서 ‘단골 법리’로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를 비롯해 당시 청와대 소속 공무원, 장차관 등은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출연금을 내게 하거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관리하도록 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올 들어선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와 관련해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 4월 성추행 및 인사보복 등의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5월엔 안미현 검사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이 문무일 검찰총장을 상대로 ‘수사외압’을 주장하면서 직권남용 적용이 논란이 됐다. 당시 검찰은 직권남용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6월엔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했던 공무원 17명에 대해 직권남용죄로 수사의뢰를 하면서 공무원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한 일을 직권남용이라고 부르면 차라리 ‘직무유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엔 사법행정권 농단과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직권남용죄 관련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와 공공기관에 “갑질 근절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면서 공직사회는 직권남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 정권도 직권남용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최근 불거진 청와대의 국민연금 인사 개입 의혹과 이헌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 해임, 한·미 관계 싱크탱크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의 구재회 소장 교체 등 현 정부의 인사에 대해서도 야당에선 직권남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개념 모호해 가이드라인 필요
형법 제123조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직무유기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게 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직권 남용’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호해 법의 구성요건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시각이 많다.
이 때문에 검찰도 처벌에 신중했다. 단독 법리로 적용하지 않고 공무원의 사익 추구 행위가 병행했을 때만 처벌하는 것이 관례였다. 무죄율도 높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구속했지만 1·2·3심 모두 무죄가 나왔다. 논란이 많은 직권남용죄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됐지만 2006년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법조계에선 직권남용죄에 대해 헌재에 다시 위헌 제청을 거치거나 입법이나 판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한다”며 “현 정부의 인사나 각종 정책에 대해서도 다음 정부에서 똑같이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정부 고위간부는 20일 “사실상 걸려고 마음만 먹으면 모두 걸리는 것이 직권남용죄”라며 이같이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직권남용죄로 고소·고발당하는 전·현직 공무원이 급증하면서 공직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 고소·고발은 올해 상반기 2468명으로 전년 동기(1394명)의 1.7배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고소·고발된 공무원은 2014년 연간 접수 건수(1262명)의 2배에 달했다. 관련 고소·고발은 2015년 1402명에서 2016년 2059명, 2017년 3282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현 정부 들어 고소·고발 급증
직권남용죄가 급증한 배경엔 ‘적폐수사’가 있다. 직권남용죄는 수사 과정에서 ‘단골 법리’로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를 비롯해 당시 청와대 소속 공무원, 장차관 등은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출연금을 내게 하거나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관리하도록 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올 들어선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와 관련해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 4월 성추행 및 인사보복 등의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5월엔 안미현 검사와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이 문무일 검찰총장을 상대로 ‘수사외압’을 주장하면서 직권남용 적용이 논란이 됐다. 당시 검찰은 직권남용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6월엔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했던 공무원 17명에 대해 직권남용죄로 수사의뢰를 하면서 공무원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한 일을 직권남용이라고 부르면 차라리 ‘직무유기’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엔 사법행정권 농단과 관련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직권남용죄 관련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와 공공기관에 “갑질 근절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면서 공직사회는 직권남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현 정권도 직권남용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최근 불거진 청와대의 국민연금 인사 개입 의혹과 이헌 전 법률구조공단 이사장 해임, 한·미 관계 싱크탱크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의 구재회 소장 교체 등 현 정부의 인사에 대해서도 야당에선 직권남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개념 모호해 가이드라인 필요
형법 제123조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직무유기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게 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직권 남용’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모호해 법의 구성요건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시각이 많다.
이 때문에 검찰도 처벌에 신중했다. 단독 법리로 적용하지 않고 공무원의 사익 추구 행위가 병행했을 때만 처벌하는 것이 관례였다. 무죄율도 높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로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구속했지만 1·2·3심 모두 무죄가 나왔다. 논란이 많은 직권남용죄는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됐지만 2006년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법조계에선 직권남용죄에 대해 헌재에 다시 위헌 제청을 거치거나 입법이나 판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한다”며 “현 정부의 인사나 각종 정책에 대해서도 다음 정부에서 똑같이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