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3년 전부터 ‘하류노인(下流老人)’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하류노인은 중산층으로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노후에 빈곤층으로 추락한 노인을 뜻하는 신조어다. 일본 하류노인은 600만~7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거품 경제가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을 경험한 세대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의 저자 후지타 다카노리는 “연봉이 400만엔(약 4000만원) 수준인 중산층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노년에 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중산층은 한국 상황과 비교하면 나은 편이다. 1990년대 부동산 추락을 경험한 이후 금융자산 비중을 전체 자산의 50% 이상으로 늘리면서 가계 포트폴리오를 정비했다. 한국은 가계자산에서 금융자산 비율이 20%도 되지 않는다. 늦었다고 판단됐을 때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하류노인 대란’이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日 '하류노인 비극' 피하려면… "부동산 몰빵 말고 해외투자를"
◆“저성장시대 해법은 해외 투자”

계획적인 재테크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한민국 중산층 상당수가 노후 걱정은 되는데 여유는 없고 방법도 잘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그렇다고 미루고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게 자산관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가계자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자산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얘기다. 부동산 강세론자로 알려진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도 “많은 사람이 기다리다가 오르면 파는 게 계속 가능할 거라고 믿지만 이미 부동산도 강남이나 서울 특정 지역만 올라가고 있다”며 “그마저도 실질 성장률과 세금을 빼면 크게 차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값도 결국은 경기에 연동하는데 성장률이 점점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에 전체 노후자금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며 “은퇴에 가까워질수록 금융자산 비중을 높여 매달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 중산층은 199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부동산과 주식에서 큰 손실을 봤다. 1991년부터 시작된 장기불황을 10년 겪은 뒤에야 2000년대부터 해외 자산으로 눈을 돌렸다. ‘와타나베 부인’이란 용어도 이때 등장했다. 김 소장은 “일본과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도 선제적으로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산층의 전체 자산에서 해외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 수준에 불과하다. 신상근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장은 “중국이나 미국처럼 내수가 충분하다면 괜찮지만 우리 내수시장은 규모가 작고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며 “전체 자산의 10% 이상을 고성장하는 해외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준 KB증권 수석자산배분전략가도 선진국 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불황이 오면 부동산과 위험자산이 동시에 무너질 수 있다”며 “선진국 자산과 미국 달러 예금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펀드에 대한 불신 걷어내야”

중산층 재테크의 기본은 퇴직연금 활용이라는 조언도 빠지지 않았다. 여윳돈이 부족할수록 연금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직장인 상당수가 원금보장형 상품에 돈을 묶어둔 채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박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직접 일해서 버는 돈과 세금에 크게 신경 쓰듯이 투자에도 땀을 흘려야 한다”며 “최근 타깃데이트펀드(TDF)처럼 자산을 배분하고 주기적으로 비중도 조절해주는 상품이 출시되고 있는데 결국 최종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알고 하는 투자와 모르고 하는 투자는 간접투자라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펀드와 같은 금융자산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는 게 먼저라는 조언도 있다. 정부 당국과 금융투자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중산층의 마음을 돌려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펀드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금융자산으로 유도해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펀드매니저가 수시로 바뀌고 수익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펀드에 금쪽같은 돈을 믿고 맡기기 어렵다”며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만수/나수지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