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려는 초유의 ‘강제수사’ 칼을 빼들면서 사법부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검찰이 전형적인 특수수사 방식을 동원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더 거칠게 수사를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사 과정 자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사법부 신뢰 하락을 야기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법원 내에서 커지고 있다.
檢, 내달 양승태 前대법원장 포토라인 세우나
◆前 대법원장 압수수색까지 시도한 檢

검찰은 지난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동식저장장치(USB)를 분석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임 전 처장이 재직 당시 사용한 컴퓨터에 있던 주요 파일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신청했으나 법원은 “주거권을 해할 정도로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 수사는 자연스레 당사자 소환 조사로 흘러가고 있다. 우선 검찰은 참고인과 피고인으로 소환 대상자의 신분을 나누게 된다. 검찰 내부 관계자는 “특수수사 흐름대로라면 확보한 자료의 분석이 끝나는 대로 관련자 소환 조사를 시작할 것이며 마지막엔 양 전 대법원장까지 포토라인 앞에 세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환 시기는 8월 중순이 유력하게 꼽힌다. 오는 8월 퇴임을 앞둔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도 참고인 신분의 소환자로 거론된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카드가 여러모로 검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했다고 책임을 돌릴 수 있다. 검찰의 수사 규모를 보더라도 향후 수사는 더욱 거침없을 전망이다. 중앙지방검찰청은 검사만 22명, 총 50명 넘는 수사팀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으로서는 ‘준대형’ 규모다. 한 특수통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관 개개인을 줄소환해 압박하고 그 가운데서 의미있는 발언을 뽑아내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며 “일부 발언이 언론에 흘러들어가 여론전에 동원되기 시작하면 법관들의 ‘멘탈’이 무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원 후보자 “재판 거래 없다고 생각”

수사 초기 사법부 내에는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을 털어내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하지만 흐름을 보니 검찰과 법원의 ‘동상이몽’이 명확해졌다는 게 검찰 수사 필요성을 인정한 법관들조차도 동의하는 대목이다.

한 현직 고위판사는 “관련 증거가 확보됐고 고발인 조사까지 마친 상황에서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한다는 건 검찰이 법원을 이참에 다 털어내보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정권과 대법원장이 바뀔 때마다 검찰에 의해 법원이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필요하면 검찰 수사라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던 한 현직 부장판사는 “혐의를 정확히 특정하고 조심스레 수사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방식은 먼지털기식 특수수사 방식이라 상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법관 후보자들은 사법행정권 농단 의혹을 놓고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동원 대법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 “재판 거래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며 “27년간의 재판업무 경험, 특히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한 경험으로는 그렇게 믿는다”고 말했다.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는 “잘못된 과욕이 부른 참사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재판 거래 의혹을 시인했다. 그는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