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내년 3월29일 23시' 브렉시트… EU탈퇴 방법론 놓고 내분 커지는 英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EU 탈퇴 8개월 남기고…
온건파 "하드 브렉시트 땐
경제적 손실 GDP 4% 달해
충격 최소화할 시간 필요"
강경파 "EU 성장세 지지부진
빨리 결별하는 것이 더 도움"
EU "英과 무합의 결별 대비"
온건파 "하드 브렉시트 땐
경제적 손실 GDP 4% 달해
충격 최소화할 시간 필요"
강경파 "EU 성장세 지지부진
빨리 결별하는 것이 더 도움"
EU "英과 무합의 결별 대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2009년 12월1일 발효된 리스본조약(EU 개정조약)에 따라 영국은 내년 3월29일(현지시간)이면 EU를 탈퇴한다. 영국과 EU는 오는 10월 타결을 목표로 브렉시트 협상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론이 갈리고 있다. 브렉시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외하더라도 EU 탈퇴 방법론을 놓고 둘로 갈라진 상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소프트 브렉시트’ 원칙을 정하고 EU와 탈퇴 협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충격이 있더라도 국경통제권과 사법권을 즉각 되찾아야 한다는 ‘하드 브렉시트파(강경파)’의 반발이 만만찮다. 강경파인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 등 일부 각료가 이달 초 메이 총리에게 반기를 들고 사퇴한 데 이어 정부가 내놓은 브렉시트 관련법안 수정을 요구해 관철하기도 했다. 브렉시트 강경파는 중산층 이하 서민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EU 체제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9일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과 산하기관, 주요 기업에 EU와 영국이 합의 없이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 충격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전달했다. ‘하드 브렉시트’ 충격을 피하라
영국 정부가 소프트 브렉시트로 방향을 잡은 것은 핵심 산업인 금융업 등이 받을 충격 때문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이 EU와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는 하드 브렉시트로 나아간다면 경제적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EU의 경제적 손실 역시 전체 GDP의 1.5%에 이르는 2000억유로(약 260조원)가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은 1973년 EU의 모태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할 때만 해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보다 1인당 GDP가 낮은 유럽의 병자였다. 하지만 EU 체제 아래서 대처 전 총리의 개혁정책이 성공하면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고 2013년엔 1인당 GDP가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세 나라 평균보다 높아졌다. 영국이 45년간 EU 체제에서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달성했고 향후에도 유럽시장 접근이 경제 성장에 필수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이 총리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점진적인 EU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브렉시트 백서’에는 지난해 12월 EU와 진행한 1차 협상부터 앞으로 할 논의까지 소프트 브렉시트를 위한 진행 과정과 계획이 담겨 있다.
백서에 따르면 영국은 당분간 EU로부터 시장접근 허용 등의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대략 500억유로(약 66조원)를 합의금 성격으로 EU에 내기로 했다. 또 EU 회원국 국민이 비자 없이 자유롭게 영국을 오갈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육상 국경 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방침이다.
“EU 체제는 서민층에 도움 안 된다”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강경파는 경제 통합 이득을 대부분 상류층과 개발도상국 출신 이민자 등 특정 계층만 챙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의 중산층 이하 서민에겐 이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경파는 브랑코 밀라노비치 전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가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집계한 소득 분위에 따른 가계 1인당 누적 실질소득 증가율을 근거로 제시했다.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 상류층을 비롯해 개발도상국 모든 계층에선 소득이 크게 증가한 반면 선진국 중산층 이하 가구는 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코끼리 곡선’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까지 EU 출신 이민자의 복지혜택 문제로 EU 집행위원회와 대립한 것도 서민층 불만과 무관치 않다. 당시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영국 인구가 2030년까지 523만 명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부담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난민을 포용하려는 EU 정책도 영국의 반(反)EU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에 난민을 분담해 수용하도록 하는 ‘쿼터제’를 결정하자 영국은 이를 거부했다.
영국과 유럽대륙은 정치·제도적 차이는 물론 역사적·정서적 차이도 크다. 영국은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반면 유럽대륙의 바탕에는 개입주의 철학이 깔려 있다. 19세기 영국은 유럽 내부 대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영광의 고립’을 택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와 동맹을 맺지 않은 덕에 나폴레옹 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까지 수백 년간 전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성장세가 지지부진한 EU와 빨리 결별해야 성장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주장도 영국에서 나온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미국 등 주요국과의 개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을 추진 중이다. 리엄 폭스 국제무역장관은 “미국은 영국의 최대 단일무역 파트너이자 투자국이며 태평양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켜보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EU 체제에 불만이 적지 않은 국가들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브렉시트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 이들 국가에서도 영국을 따라 EU를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 난민 문제를 앞세워 EU에 반기를 드는 사례가 많지만 본질적으론 유로화에 불만이 더 크다. 2002년 도입된 유로화는 단기간에 달러화에 이은 기축통화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남유럽이 재정위기에 휩쓸리며 회의론도 커졌다. 산업 경쟁력이 강한 독일, 프랑스 등은 이득을 보는 반면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에선 구조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재정 적자를 유발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 등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돼도 통화정책을 쓰지 못하고 재정정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엔 EU가 회원국에 긴축재정을 요구해 서민 복지에 구멍이 났다. 그러자 각국에서 우파 성향의 반EU 정당들이 떠올랐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 비교적 변방국에서 시작해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규모 3위 이탈리아에서도 유로존 탈퇴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파정당 ‘오성운동’이 집권에 성공하면서다. 독일에서도 EU에 부정적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이현일/김형규 기자 hiuneal@hankyung.com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론이 갈리고 있다. 브렉시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외하더라도 EU 탈퇴 방법론을 놓고 둘로 갈라진 상태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소프트 브렉시트’ 원칙을 정하고 EU와 탈퇴 협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충격이 있더라도 국경통제권과 사법권을 즉각 되찾아야 한다는 ‘하드 브렉시트파(강경파)’의 반발이 만만찮다. 강경파인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 등 일부 각료가 이달 초 메이 총리에게 반기를 들고 사퇴한 데 이어 정부가 내놓은 브렉시트 관련법안 수정을 요구해 관철하기도 했다. 브렉시트 강경파는 중산층 이하 서민과 블루칼라 노동자가 EU 체제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9일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과 산하기관, 주요 기업에 EU와 영국이 합의 없이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 충격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표문을 전달했다. ‘하드 브렉시트’ 충격을 피하라
영국 정부가 소프트 브렉시트로 방향을 잡은 것은 핵심 산업인 금융업 등이 받을 충격 때문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이 EU와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하는 하드 브렉시트로 나아간다면 경제적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EU의 경제적 손실 역시 전체 GDP의 1.5%에 이르는 2000억유로(약 260조원)가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은 1973년 EU의 모태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할 때만 해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보다 1인당 GDP가 낮은 유럽의 병자였다. 하지만 EU 체제 아래서 대처 전 총리의 개혁정책이 성공하면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고 2013년엔 1인당 GDP가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세 나라 평균보다 높아졌다. 영국이 45년간 EU 체제에서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달성했고 향후에도 유럽시장 접근이 경제 성장에 필수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이 총리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점진적인 EU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브렉시트 백서’에는 지난해 12월 EU와 진행한 1차 협상부터 앞으로 할 논의까지 소프트 브렉시트를 위한 진행 과정과 계획이 담겨 있다.
백서에 따르면 영국은 당분간 EU로부터 시장접근 허용 등의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대략 500억유로(약 66조원)를 합의금 성격으로 EU에 내기로 했다. 또 EU 회원국 국민이 비자 없이 자유롭게 영국을 오갈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육상 국경 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방침이다.
“EU 체제는 서민층에 도움 안 된다”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강경파는 경제 통합 이득을 대부분 상류층과 개발도상국 출신 이민자 등 특정 계층만 챙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의 중산층 이하 서민에겐 이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경파는 브랑코 밀라노비치 전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가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집계한 소득 분위에 따른 가계 1인당 누적 실질소득 증가율을 근거로 제시했다.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 상류층을 비롯해 개발도상국 모든 계층에선 소득이 크게 증가한 반면 선진국 중산층 이하 가구는 소득이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코끼리 곡선’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까지 EU 출신 이민자의 복지혜택 문제로 EU 집행위원회와 대립한 것도 서민층 불만과 무관치 않다. 당시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영국 인구가 2030년까지 523만 명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부담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난민을 포용하려는 EU 정책도 영국의 반(反)EU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에 난민을 분담해 수용하도록 하는 ‘쿼터제’를 결정하자 영국은 이를 거부했다.
영국과 유럽대륙은 정치·제도적 차이는 물론 역사적·정서적 차이도 크다. 영국은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반면 유럽대륙의 바탕에는 개입주의 철학이 깔려 있다. 19세기 영국은 유럽 내부 대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영광의 고립’을 택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와 동맹을 맺지 않은 덕에 나폴레옹 전쟁부터 1·2차 세계대전까지 수백 년간 전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성장세가 지지부진한 EU와 빨리 결별해야 성장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주장도 영국에서 나온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미국 등 주요국과의 개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을 추진 중이다. 리엄 폭스 국제무역장관은 “미국은 영국의 최대 단일무역 파트너이자 투자국이며 태평양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켜보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EU 체제에 불만이 적지 않은 국가들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브렉시트의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 이들 국가에서도 영국을 따라 EU를 떠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 난민 문제를 앞세워 EU에 반기를 드는 사례가 많지만 본질적으론 유로화에 불만이 더 크다. 2002년 도입된 유로화는 단기간에 달러화에 이은 기축통화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남유럽이 재정위기에 휩쓸리며 회의론도 커졌다. 산업 경쟁력이 강한 독일, 프랑스 등은 이득을 보는 반면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에선 구조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재정 적자를 유발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 등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돼도 통화정책을 쓰지 못하고 재정정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엔 EU가 회원국에 긴축재정을 요구해 서민 복지에 구멍이 났다. 그러자 각국에서 우파 성향의 반EU 정당들이 떠올랐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 비교적 변방국에서 시작해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 규모 3위 이탈리아에서도 유로존 탈퇴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우파정당 ‘오성운동’이 집권에 성공하면서다. 독일에서도 EU에 부정적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이현일/김형규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