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이 속한 도소매·유통업(특례제외업종)은 내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된다. 쿠팡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한다는 취지에서 300인 이상 일반 기업처럼 이달부터 제도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20여 일이 지나면서 회사 측과 근로자 누구도 웃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월급 줄어든 쿠팡맨 이탈 잇따라… 배달 공백은 저임금 알바로 채워
뭐가 바뀌었나

쿠팡맨은 쿠팡이 2014년 3월 도입한 빠른 배달 시스템 ‘로켓 배송’을 담당하는 핵심 인력이다. 평균 연봉이 375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처우가 좋은 편인 데다 2년 이상의 운전 경력만 있으면 지원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6년 3600여 명에 달하던 쿠팡맨이 올 들어 2800여 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여러 문제가 섞여 있지만 최근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맨들은 이달부터 ‘주 50시간제’를 적용받고 있다. 종전에 비해 하루 근로시간이 11시간에서 10시간으로 한 시간 줄었다. 추가 연장근로나 주말근로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주 50시간(주 5일×10시간)을 맞추고 있다. 월 근로시간이 종전보다 20시간 감소하면서 월 급여도 20만원 안팎 줄었다. 과거엔 주 6일 근무 등을 자원해 연 4500만원까지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배송량은 유지하기 위해 지난 5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오토(자동) 휴무’도 불만 요인이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배송량만을 기준으로 삼아 쉬어야 할 인원과 대상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개인 선호도를 반영할 수 없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회사로서는 주 52시간제를 지키면서 배송 물량을 차질 없이 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최근에는 2교대제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쿠팡맨들은 쉬는 시간 한 시간을 포함해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한다. 이를 새벽 2시30분에서 낮 12시30분까지 일하는 ‘새벽조’와 낮 12시에서 밤 11시까지 일하는 ‘오후조’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밤에도 배송 수요가 있지만 연장근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대책이다. 한 쿠팡맨은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일상 생활은 힘들어질 것”이라며 “정부는 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다고 했지만 우리는 모든 조건이 나빠졌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임시직 일자리만 양산”

줄어든 쿠팡맨의 근로시간을 채우는 것은 다른 쿠팡맨이 아니라 비정기(임시) 일자리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로켓배송 서포터즈’가 대표적이다. 일종의 단기 아르바이트 인력으로 하루 3~4시간 동안 쿠팡맨을 도와 물품을 배달한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쿠팡맨이 물품을 트럭에 싣고 도착하면, 은마아파트나 인근에 거주하는 로켓배송 서포터즈가 전달받아 배달하는 식이다. 쿠팡맨은 그만큼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지역을 돌 수 있다.

로켓배송 서포터즈의 급여는 배송 건당 450원. 20건을 배달하면 9000원을 받는다. 수입은 배송량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쿠팡맨의 임금 일부를 줄여가며 만든 일자리치고는 지나치게 질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쿠팡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쉽사리 처우 개선에 나서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쿠팡은 지난해까지 3년간 누적 영업손실이 1조7000억원에 달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양질의 새 일자리가 생기는 게 아니라 기존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고 저임금 임시직 근로자가 양산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근로 공백을 계약직·아르바이트 직원이 채우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 근로자의 임금이 깎이면서 ‘택배기사 도우미’라는 과거에 없던 저임금 일자리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