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휴일인 22일 서울 자양동 한국전력공사 뚝도변전소를 찾아 전력수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이 휴일인 22일 서울 자양동 한국전력공사 뚝도변전소를 찾아 전력수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탈(脫)원전을 추진해온 정부가 원자력발전소에 ‘긴급 구조요청(SOS)’을 하고 있다. 당초 계획했던 원전의 정비 일정까지 바꾸면서 전력 수급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기업 및 가정의 냉방 수요에 따른 전기 사용량이 급증해서다.

'최악 폭염' 덮치자… 원전 다시 찾는 정부
한국수력원자력은 22일 “계획예방 정비로 정지 중인 한빛 3호기와 한울 2호기를 전력 피크 기간인 다음달 둘째~셋째주 이전에 재가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의 계획예방 정비를 전력 피크 기간 이후로 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전 재가동을 결정하는 것은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권한이지만 상황이 급박한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전력 공급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적극 협의에 나서겠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의 정비는 당초 다음달 13일과 15일 시작될 예정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해 정비 착수 시기를 우선 다음달 18일 및 29일로 각각 늦추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를 통해 다음달 중순까지 총 500만㎾ 규모의 추가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지난 5월부터 계획예방 점검에 들어갔던 한울 4호기는 이달 21일 재가동됐다. 24일 발전소 출력 100%에 도달할 전망이다. 정부의 잇따른 원전 재가동에 따라 다음달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원전(총 19기)이 전력을 생산할 전망이다. 올 상반기만 해도 총 24기의 국내 원전 가운데 최대 12기가 멈춰서 있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건 원전뿐”이라며 “탈원전 기조를 고수해온 정부가 전력 공백이 가시화하자 원전에 기대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정부는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발전 등 원전 대체 에너지원도 최대한 가동하고 있다. 최근에도 삼천그린화력 2호기, 북평화력 1호기, 화동화력 4호기 등을 서둘러 재가동했다. 지난주 석탄발전은 총 61기 중 59기, LNG 발전은 237기 중 230기가 가동됐다는 게 한국전력거래소의 얘기다.

정부가 원전 LNG 석탄 등 각종 발전을 최대치까지 가동하고 나선 건 전력 수요가 당초 예상과 달라서다. 전력거래소는 원래 다음달 중순께야 올해 최대 전력수요(8830만㎾)에 도달할 것으로 봤지만 이보다 보름가량 빠른 이번주 중 최대 수요를 경신할 것으로 수정 전망했다. 2011년 9월15일엔 전력 수요예측이 잘못돼 국가 대정전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올해 장마가 45년 만에 가장 빨리 끝났기 때문에 폭염이 예상과 달리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며 “다만 필요한 조치를 취해 예비전력을 매일 1000만㎾ 이상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도 전력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전력수급 긴급 점검에 나섰다. 백 장관은 이날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조영탁 전력거래소 이사장, 조성완 전기안전공사 사장 등과 함께 서울 자양동 한전 뚝도변전소를 찾아 “전력수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업들은 작년 겨울에만 총 10차례 발동됐던 전력 수요감축 요청(DR)이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DR은 대규모 공장 등을 운영하는 기업이 피크 시간에 전기 사용을 줄이면 정부가 보상하는 제도다. 계약기업은 전력 중개업체의 요청이 오면 따라야 한다. 최대 전력수요는 한 시간 단위로 전력거래소가 측정한다. 아직 최대 전력수요가 초과된 적은 없지만 공급 예비력은 지난주에만 두 차례나 1000만㎾ 밑으로 떨어졌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