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1타 차 단독선두까지 치고 나가면서 완벽한 ‘통산 80승’ 부활 드라마를 쓰는 듯했다. 하지만 후반 11번홀에서 더블 보기를 내준 게 끝내 발목을 잡았다. 고대하던 우승은 없었지만 세계는 다시 한 번 ‘예전의 호랑이’로 돌아온 붉은 우즈의 비상을 만끽했다.
우즈는 23일 스코틀랜드 앵거스의 카누스티 링크스 골프장(파71· 7402야드)에서 열린 디오픈 최종일 4라운드를 이븐파 71타로 마쳤다. 최종합계 5언더파를 친 그는 공동 6위로 대회를 아쉽게 마무리했다. 18번홀에서 그가 마지막 파 퍼트를 밀어넣고 모자를 벗자 스탠드를 가득 메운 갤러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4타 차 뒤집기 드라마는 연출되지 못했다. 메이저 15승 도전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PGA 투어는 이제 ‘타이거 있는 대회’와 ‘타이거가 없는 대회’ 두 종류로 나뉘어질 분위기다. 우승은 못했지만 주인공은 우즈였다. 이달 초 퀴큰론스 내셔널 대회에서 71년만에 이탈리아 출신으로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던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6)가 8언더파로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렸다. 자신의 PGA 투어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자, 통산 2승. 이탈리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디오픈 우승자가 됐다. 우승상금 189만달러(약 21억원)가 그의 몫이 됐다. 젠더 셔펠레와 저스틴 로즈, 로리 매킬로이,케빈 키스너가 공동 2위 그룹으로 대회를 끝냈다.
이날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전날보다 더 강하게 불었다. 우즈의 시작은 사뭇 비장함이 감돌았다. 페어웨이에 설 때마다 붉은 티셔츠가 펄럭였다. 잔뜩 찌푸린 우즈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목덜미에 있던 KT테이프도 보이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다는 방증. 3라운드까지 5언더파를 쌓은 우즈가 선두그룹을 따라잡으려면 4개 이상의 버디가 필요했다.
“고우 타이거!”
갤러리들은 들뜬 함성 대신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우즈를 응원했다. 우즈보다 갤러리들이 더 긴장한 듯했다.
첫 3개의 홀에서 파가 나왔다. 그러는 사이 공동선두로 나섰던 케빈 키스너가 2번홀 항아리 벙커에 갇혔다. 순식간에 2타를 잃었다. 두 번의 샷을 하고서야 벙커를 탈출할 수 있었다. 3번홀에서 키스너의 짧은 파퍼트가 홀을 돌고 나왔다. 키스너와 함께 공동선두로 최종일을 시작한 조던 스피스와 젠더 셔펠레도 한 타씩을 잃었다. 둘 역시 벙커에 공이 갇히며 덜미가 잡혔다.
우즈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4번홀에서 3m버디 퍼트를 홀에 꽂아넣은 뒤 6번홀에서 2온,2퍼트로 버디 한 개를 추가했다. 7언더파. 뒷걸음질 친 선두그룹과 달리 우즈는 견고하게 타수를 지켜나갔다. 8번홀에서 티샷이 벙커에 빠졌지만 홀에 붙여 파를 지켰다.
로리 매킬로이가 뒤편에서 힘겹게 추격전을 펼쳤다. 보기 2개를 내줬다가 버디 1개를 잡아내며 제자리로 한 걸음 돌아갔다.
선두에 변화가 생긴 곳이 6번홀. 선두그룹이 타수를 잃는 사이 타수를 지킨 우즈가 공동선두로 올라선 것이다. 디오픈 대회장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곳으로 정평난 카누스티 필드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페어웨이 리더보드 맨 위에 타이거 우즈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셔펠레가 또 다시 벙커에 공을 빠트리면서 1타를 잃었고, 스피스가 두 번째 샷을 관목수풀에 집어넣는 탓에 4온 3퍼트로 더블 보기를 범한 결과였다.
우즈도 9번홀에서 위기를 맞았다. 세컨드샷이 그린 오른쪽 벙커에 들어간 것. 하지만 우즈가 벙커에서 공을 꺼내기도 전에 단독 선두로 순위가 바뀌었다. 이때까지 공동선두였던 셔펠레가 7번홀에서 러프를 전전한 끝에 더블보기를 범한 것이다.
우즈는 벙커에 빠진 공을 높이 쳐올리는 놀라운 샷메이킹을 연출하며 공을 그린 프린지까지 내보냈다. 갤러리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전성기 때의 우즈가 오버랩됐다. 파세이브. 단독 선두가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깊은 러프트랩을 피하지 못했다. 11번홀 티샷이 밀리면서 러프로 들어갔고,두 번째 샷이 감기면서 갤러리로 향했다. 갤러리를 맞고 떨어진 공을 우즈는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3퍼트 더블 보기. 사흘내내 버디를 잡았던 홀에서 뜻밖의 사고가 터져나왔다. 이번 대회 첫 더블 보기가 그를 옭아매고 말았다. PGA 투어에 따르면 디오픈 최종일 더블 보기를 하고도 우승한 마지막 챔피언은 파드리그 해링턴이다. 그는 2007년 제136회 디오픈에서 더블 보기를 내줬지만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우즈도 더블 보기의 트랩에 갇혔다.
선두가 다시 뒤집혔다. 조던 스피스와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등 6언더파 그룹이 다시 공동 선두를 차지했다. 우즈는 다시 최종 라운드에 들어선 때의 타수,5언더파 원점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강해지면서 대다수 선수들의 샷이 뜻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바람이 시속 10~17마일로 불었다.
강풍속에서도 매킬로이가 후반에 뒷심을 발휘했다. 9번홀,11번홀 버디를 잡고,12번홀에서 보기 한 개를 내주며 호흡을 가다듬던 그였다. 14번홀(파5)에서 15m짜리 긴 이글 퍼트를 성공시킨 것이다. 초반 보기 2개를 내주면서 선두경쟁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2014년 디오픈 챔피언 매킬로이였다. 순식간에 공동선두 그룹에 합류했다.
반면 우즈의 추격전은 쉽게 속도가 붙지 않았다. 가장 쉬운 파5홀인 14번홀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뒷편 4번홀 그린까지 넘어갔다. 웨지를 빼든 우즈의 세 번째 어프로치가 홀에서 5m 짧았다. 아쉬운 결과. 하지만 우즈는 멈추지 않았다. 버디 퍼트를 밀어 넣어 한 계단 순위를 끌어 올렸다. 동반 경기자인 몰리나리가 버디를 잡아내며 단독 선두(7언더파)로 올라섰다.
후반으로 갈수록 승부 구도가 혼전 양상으로 흘렀다. 셔펠레가 14번홀에서 1타를 줄여 몰리나리와 공동 선두가 됐다. 매킬로이는 6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 선두그룹이 타수를 잃을 경우 우승가능성은 남아있는 상황.
2타 뒤진 우즈에겐 2홀이 남아 있었다. 선두가 무너지거나,우즈가 불타오르거나 ‘극장골프’만이그를 챔피언으로 올려줄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실현되지 않았다.
17번홀을 파로 마친 우즈는 18번홀에서도 파에 그치며 우승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우즈는 이제 PGA 투어의 상시 변수로 떠올랐다. 케빈 키스너와 스피스도 더이상 힘을 내지 못했다. 마지막 홀에서 버디 1개를 추가하며 8언더파로 대회를 끝낸 몰리나리의 우승이 굳어져 갔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