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 사진=최혁 기자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 사진=최혁 기자
서울대·연세대·차의과학대·이화여대 등 대학병원들이 의료데이터에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는 실험에 나섰다. 인공지능(AI) 활용에는 소극적이던 유명 대형병원들의 행보여서 더욱 이례적이다. 해외 의료계도 눈여겨볼 정도로 주목도가 높다.

지난 17일 출범한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KOREN(Korea Advanced Research Network) 기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의료정보 유통 실증 및 의료 네트워크 연구협의체 구성’을 위한 정부 과제 얘기다. 약칭 ‘NIA 프로젝트’. 대학병원들과 함께 미소정보기술 신테카바이오 씨이랩 웰트 등 전문기업이 공동 참여한다.

NIA가 1995년부터 국내외 주요 연구기관들 망과 연동해 운영 중인 연구용 네트워크 KOREN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개인건강기록(PHR) 안전 유통을 위한 플랫폼 보편화는 물론 병원별로 진행돼 낭비 요인이 있는 국내 진단검사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맡은 ‘블록체인 위탁기관’이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스타트업 메디블록이다. NIA 프로젝트 발대식 이튿날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사진)는 대형병원들의 적극적 움직임은 블록체인이 확실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국내 대형병원들이 AI에 소극적이었던 건 시기상 늦은 데다 실익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뒤 “블록체인은 상황이 다르다. 세계적으로 앞서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병원에게도 실제로 득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진단에 적용되는 AI는 부가적 의료서비스로 분류된다. 환자의 병력과 신상정보 등을 입력하면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 치료법을 추천하는 수준이다. 이를 참조해 인간 의사가 최종 처방을 내린다. AI가 진단한다고 해서 환자에게 비용을 더 받을 수도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반면 블록체인은 의료데이터에 접목하면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냉정히 말해 대형병원들이 수익을 내는 것은 환자 검사와 수술 단계까지다. 이후 환자의 예후를 지켜보며 진행하는 일상적 진료는 병원경영 측면에선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으로 1·2차 의료기관은 환자가 없어 경영이 어렵다. 때문에 의료계는 ‘중요한 치료는 대형병원에서, 일상적 진료는 동네 의원에서’ 구도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환자들 시각은 다르다. 무엇보다 병원간 개인 진료기록 전달이 여의치 않은 탓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정보보호가 보장되고 데이터 전달도 용이한 PHR 형태가 구현된다면?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 사진=최혁 기자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 사진=최혁 기자
“환자들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합니다. 굳이 갈 필요 없는데 대형병원으로만 쏠리는 이유가 뭘까요. 수술 받고 진료한 기록이 남아있는 병원이니 그렇죠.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게 불안한 거예요. 진료 기록을 서류 뭉치로 뽑아서 주는 건 사실상 활용이 힘든 데이터입니다.”

인터넷 검색이 없던 시절 지면신문을 모아놓은 신문철을 뒤지며 기사를 찾던 것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고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로 개인 의료정보를 데이터화해 주고받을 수 있으면 일상적 진료를 받는 환자의 타 병원 회송이 가능해져 실익이 크다”고 부연했다.

블록체인 활용으로 글로벌 의료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 요인이다. 최근 의료계에선 블록체인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단 이들 연구는 이론과 전망에 그칠 뿐, ‘실증’되지는 않았다. NIA 프로젝트가 블록체인 이용 실증연구에 초점을 맞춘 이유다.

“우리나라는 의료정보 실증연구에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디지털 데이터가 잘 갖춰진 데다 의료진 질도 높거든요. 국내 톱5 병원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곳들이에요. 여기서 블록체인 연구를 진행해 해외 학술지에 결과를 발표하면 반향이 클 겁니다. 연구에 홍보 효과까지 큰 상황이죠.”

이 같은 점에서 국내 유명 대형병원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파급력을 갖는다고 고 대표는 귀띔했다.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 사진=최혁 기자
한경닷컴과 인터뷰하는 고우균 메디블록 공동대표. / 사진=최혁 기자
메디블록은 수익창출을 넘어 보다 먼 곳을 보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개인 의료정보시스템으로 각 병원에 흩어져 있던 의료정보를 통합해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의료데이터에 대한 주권을 환자 자신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소비자 시각이 우선시돼야 해요. 의료데이터로 수익을 내는지 여부보다 해당 데이터를 토대로 의료소비자가 더 나은 진료·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현재 의료진과 환자 간 불신은 객관적 데이터에 바탕한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초래한 면이 커요. 메디블록은 여기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려 합니다.”

치과의사이기도 한 그는 충치 치료를 대표적인 불신 사례로 들었다. “충치가 있어도 치료해야 하느냐 아니냐의 판단 기준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환자들은 되도록 돈 들이지 않는 쪽을 ‘양심 의사’라 생각하죠.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이 잘 안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적어도 객관적 데이터가 있다면 환자에게 정확히 이유를 알려주고 오해도 풀 수 있겠지요.”

환자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설명해 진료 이해도를 높인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명확히 알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료데이터를 활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의료데이터 시각화(visualization)까지 나아간다.

회사 비전과 액션플랜을 조목조목 짚은 고 대표는 “메디블록의 코어(핵심)는 ‘의료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신뢰 네트워크’ 구축이다. 코어를 탄탄히 만들어놓으면 어플리케이션(앱) 등 해외 각국의 로컬(지역) 상황별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해외진출 가능성도 내비쳤다.

실제로 인구 형태와 정부 주도 의료보험체계 등에서 유사한 일본은 메디블록의 사업모델에 관심이 크다. 그는 “일본에서 연 4차례의 밋업(meet up)에 갈수록 일반 투자자보다 현지 의료계 인사들 참석 비율이 높아졌다. 최근 도쿄 밋업에는 파나소닉 헬스케어 부문 관계자만 각 5명이 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고 대표는 컴퓨터공학 전공 후 경희대 치의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독특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은솔 공동대표와는 서울과학고 동창이다. 이 대표는 한양대 의대를 나와 영상의학과 전공의를 지냈다. 둘 모두 공학과 의학 양쪽에 친숙해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적합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의사라 의료계와 소통하는 데도 이점을 지녔다.

블록체인 기업으로선 드물게 가시적인 사업모델을 보유한 것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고 대표는 “메디블록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기술적 강화는 당연하다”면서도 “잠재적 유저(사용자) 못지않게 가상화폐 공개(ICO)에 따른 투자자 니즈(needs)에도 신경 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