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새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건 로또만큼 어렵다. 하지만 A씨는 이를 요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실패로 다진 경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첨에 주효했던 신혼부부 소득기준 계산은 집요한 공부에 대한 보상이었다.
A씨는 결혼 직후인 2012년 목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현재는 13단지 전용면적 70㎡에 4억5000만원 안팎의 전세로 거주중이지만 처음엔 13단지에 전세로 살았다. 여차하면 급매를 잡아 내집마련을 할 심산이었다. 목동의 장점이 교육 여건이라지만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당장 고려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재건축을 노렸다. 13단지의 경우 용적률이 100% 중반 수준이어서 비교적 사업성이 좋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목동에 거주하는 내내 아파트값이 뛰었고 몇 번을 고민하는 사이 매매가격은 8억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가진 돈으론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A씨와 비슷한 시기 11단지 전세에서 자가로 전환한 친구는 상황이 달랐다. ‘주거사다리’를 제대로 탔다. A씨의 친구는 당시 전용 70㎡를 4억4000만원에 샀는데 몇 년 뒤 매매가격이 6~7억원 선으로 크게 올랐다. 그러자 이를 팔고 대출 등을 보태 다시 10단지로 옮겼다. 시세로 따져보자면 대출 5억원을 제외하더라도 8억원 가량의 목돈을 깔고 있는 셈이다. 매매로는 적기를 놓쳤다는 생각에 A씨는 청약의 문을 두드렸다. 최근 3년 동안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청약엔 대부분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통장을 찔러봤다. 지난해만 해도 10곳에 신청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넣은 건 아니었다. 1000가구 내외로 규모가 크면서 뉴타운처럼 주변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거나 이미 좋은 주거 여건이 갖춰진 곳만 노렸다. 실거주뿐 아니라 매매 여건도 좋아야 언제든 주거 사다리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세가 높아야 대출도 유리하다.
A씨는 입지의 가치를 따져보기 위해 서울시 도시계획의 기본이되는 ‘2030 서울플랜’도 수차례 읽었다. 기사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접하는 정보보다 명확했다. 오를 곳은 정해져 있다는 게 결론이었다.
경기도 신도시는 노리지 않았다. 아무리 교통이 개선되더라도 서울 안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힘든 데다 서울 재입성을 장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수도권에 청약은 하지 않았지만 모델하우스는 대부분 들렀다. 그래야 자신이 살게 될 집의 평면이나 옵션, 마감재 등이 상대적으로 어떤 조건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유망 단지라고 소개된 곳이 신도시 아파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곳도 더러 있었다.
문제는 당첨이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미계약분을 잡기 위해 줄도 서봤지만 추첨운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올해로 결혼 6년차가 됐다. 당초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결혼 5년차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막차가 떠난 셈이었다. 30점대의 가점으론 일반 청약 당첨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낙담한 A씨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다. 정부가 올해부터 신혼부부 특별공급 대상을 확대했다. 신혼 인정 기간이 종전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면서 A씨도 다시 특별공급을 노릴 수 있게 됐다. 평소 부동산 뉴스에 관심이 없었다면 새롭게 대상에 포함된 줄도 모르고 지나칠 일이었다.
연초 ‘로또 아파트’로 이목을 끌었던 ‘개포디에이치자이’가 분양했지만 A씨는 청약하지 않았다. 건물의 밀도를 나타내는 용적률이 280%로 빽빽한 데다 영구음영 논란이 있었다. 실거주로 과연 쾌적한지가 A씨의 의문이었다. 당첨되더라도 10억원을 넘는 금융비용을 조달하는 게 문제였다. 고민 끝에 통장을 아끼기로 했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달 고덕동에서 ‘고덕자이’가 분양했다. 주변에 공원이 많아 환경이 쾌적한 게 특징인 단지였다. 회사가 있는 광화문과 5호선으로 한 번에 연결되는 데다 9호선 연장 호재도 있었다. 일대 마지막 재건축 물량인 것도 장점이었다. 다른 단지들의 공사가 모두 끝난 뒤 입주하기 때문에 분진은 물론 어수선한 분위기도 피할 수 있었다. 2021년 봄 입주시점에 맞춰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점에서도 시점이 꼭 들어맞았다. 모델하우스에 들러보니 평면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전용 59㎡A형의 경우 소형 면적인데도 거실이 넓게 잘 빠졌다. 최근 소형 아파트는 방과 부엌이 넓은 대신 거실이 좁은 점을 감안하면 보기 드문 평면이라는 게 A씨의 평가였다. 마감재와 옵션도 그동안 봤던 다른 단지들보다 괜찮았다.
이 아파트는 일반분양 864가구 가운데 172가구를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배정했다. 여기서도 우선공급 75%(134가구)와 일반공급 25%(38가구)가 갈렸다. 소득에 따른 구분이었다.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을 따져서 100~120%일 경우 우선공급, 121~130%일 경우 일반공급에 청약해야 했다. A씨가 육아휴직 중인 아내와의 월평균소득을 계산해보자 600만원대로 나왔다. 4인 맞벌이가구는 월평균소득이 701만원 미만(100~120%)일 경우 우선공급, 초과할 경우(121~130%) 일반공급에 청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토교통부에 문의했다. 아내가 지난해 2개월만 일하고 육아휴직에 들어갔지만 연초 상여금을 두둑히 받았기 때문에 소득 산출이 헷갈려서다. 휴직일 때는 정상 근로기간 동안 받은 급여로 월평균소득을 계산한다. 하지만 이때 ‘보너스’를 받는다면 12개월로 나누지 않고 정상 근로기간인 2개월로 나눠 월평균소득에 보태야 한다는 국토부의 답이 돌아왔다. 이 때문에 월평균 200만원 남짓 받던 아내의 소득이 300만원대로 확 올랐다. 만약 1개월만 일한 뒤 상여금을 받았다면 더욱 높아졌을 터였다. 다소 불합리하지만 제도가 개선되기 전까진 일단 이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A씨는 일반공급 청약대상자라는 답이 나왔다.
결국 A씨는 일반공급 당첨자 38명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만약 그가 소득을 꼼꼼히 계산해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일반공급(소득기준 130% 이하) 자격으로 우선공급(소득기준 120%)에 청약해 당첨됐다면 부적격자로 분류돼 낙첨됐을 것이다. 신혼 특별공급 전체 경쟁률은 25 대 1로 높은 수준이었지만 소득을 잘못 계산했거나 초과한 부적격자들이 무더기로 탈락했다.
당첨을 확인한 직후 A씨네 가족은 회식으로 내 집 마련을 자축했다. 당일부터 변화가 생겼다. 일단 스마트폰에서 분양 알리미앱을 지웠다. 분양 뉴스 스크랩도 끊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서류 심사부터 계약까지 11일 동안 준비할 게 많았다. 특히 서류 준비에 실수가 있었다. 건강보험료납부영수증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모두 나와야 하는데 이를 가리고 발급받았던 탓에 다시 준비해야 했다. 회사에서 끊은 원천징수영수증과 재직증명서 또한 직인이 필요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A씨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날릴까봐 아찔했다. 예비당첨자들이 하이에나처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가 분양받은 전용 59㎡A형은 분양가격이 6억8000만원이다. 계약금 6800만원은 이미 납부했다. 여섯 차례에 나눠 내는 중도금 3억5700만원 가운데 4회분인 2억3800만원은 대출로 충당이 가능했다. 앞으로 나머지 중도금 1억1900만원과 잔금 1억7800만원을 자비로 마련하는 게 A씨의 숙제다.
이를 위해 A씨는 이사를 알아보는 중이다. 당장은 집을 좁혀 이사가더라도 4억5000만원인 전세보증금을 낮추면 2020년 5월과 9월 찾아오는 5·6회차 중도금은 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내후년으로 예정됐던 아내의 복직도 내년으로 당기기로 했다. 다만 집을 옮기더라도 입주까지 2년 6개월이 남은 탓에 집주인과 융통성 있는 전세계약이 필요하다. 임대차계약은 2년이 기본이다.
A씨는 잔금이 다소 걱정이지만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전세입자에 머무른다면 2년마다 보증금을 올려주는 게 오히려 더 큰 걱정이어서다. 전세금이 2000만원만 올라도 월 100만원씩 종잣돈 외에 추가로 돈을 모아야 한다. “어차피 신혼부부는 늘 돈이 모자랍니다. 어떤 형태로 둥지를 마련하든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와요. 부동산에 관심 없다고 신문 한 장 넘기는 걸 귀찮아한다면 준비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겁니다.”
정리=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