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댓글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 김동원 씨와 그가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이 노린 건 국민연금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드루킹과 경공모가 대선 전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에게 접근한 이유가 국민연금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였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의원이 차기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경공모는 국민연금 장악을 위해 노 의원에게 돈을 건넸고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드루킹은 올해 초 당시 여권 실세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접근하면서도 국민연금이 타깃이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안 전 지사는 지난 1월13일 경공모·경인선(經人先:경제도 사람이 먼저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했는데, 이에 앞서 드루킹은 자신들의 경제 민주화 논리를 정리하고 안 전 지사의 의견을 묻는 문서를 충청남도에 보냈다. 드루킹은 문서에서 “재벌 오너 일가의 인적 청산을 위해 소액주주 운동과 국민연금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핵심으로 보고 있다”며 “이를 통해 주주총회에서 오너 일가를 축출하고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경영자와 이사회를 분리해 사실상 국민 기업화하는 것이 국민 경제를 위해 좋다”고 했다.

드루킹은 국민연금을 장악하면 기업은 물론 경제 구조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135조원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가지고 있는 상장사는 276개, 10%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도 96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을 활용하면 국내 대부분 상장사의 오너 일가를 몰아내고 포스코 같은 ‘국민 기업’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민연금을 장악하겠다는 드루킹 일당의 꿈은 허황하다. 설사 자신들이 지지한 인물이 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 이사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마음먹은 대로 민간 기업을 최대주주로부터 빼앗을 수 있을 만큼 기금운용 시스템이 허술하지 않다. 제도권 정치인들이 그들의 과격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란 생각도 순진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드루킹과 경공모의 ‘국민연금 장악 미수 사건’이 간담을 서늘케 하는 건 제2, 제3의 드루킹이 국민연금을 통해 연금사회주의를 꿈꿀 수 있는 토대가 26일 마련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지침) 도입을 의결, 시행한다.

드루킹의 '국민연금 장악' 미수사건이 남긴 경고 메시지
내년부터 국민연금은 투자기업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 계열사 부당 지원 등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상대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국무위원인 복지부 장관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연금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그대로 놔둔 채로다.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연금 사회주의로 이어질 것”이란 전문가들의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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