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툭하면 날씨 탓하는 정부
최근 폭염으로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이 크게 빗나가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상기온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수요 예측을 잘못한 게 아니라 날씨가 이상하다는 논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임시·일용직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것은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지난 2월에는 취업자 수 감소 이유를 “날씨가 너무 추워서”라고 설명했던 기재부다.

최근 10년간 서울의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을 기록한 것은 여섯 번이다. 한여름 무더위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작년 말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며 “앞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탈(脫)원전 정책에 꿰맞추기 위해 산업부가 전력수요를 지나치게 낮춰 잡았다”는 말이 나왔다. ‘전력수요가 많이 늘지 않기 때문에 원전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게 탈원전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산업부는 전력수요 예측 실패는 탈원전과 관련이 없고 이상 고온 현상 때문이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자리 감소 역시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고용 쇼크’ 수준의 통계가 나와도 “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봄비’ ‘한파’ 등이 일자리 감소를 설명하는 기재부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온 지난 5월 23만9000명이었던 임시·일용직 취업자 감소폭이 작년과 비슷하게 날씨가 좋았던 6월에 24만7000명으로 되레 악화됐다. 고용주는 인건비 부담이 늘면 해고가 쉬운 임시·일용직부터 구조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쯤 되면 날씨보다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악화됐다고 설명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날씨 탓만 하는 걸 지켜보는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불행(질병 재해 등)의 원인을 비과학적인 데서 찾고 샤먼(주술사)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걸 샤머니즘이라 하는데, 오죽하면 ‘샤머니즘 정부’란 말까지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