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거수기' 오명 뗄까…배당 압박, 사익 편취 기업 정조준, 의결 찬반 사전공개
'연금사회주의' 논란에 사외이사 추천 등 '경영 참여' 추후 검토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① 주주권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 편집자 주 =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강화 지침인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합니다.

재계의 경영권 간섭 시비를 의식해 주주제안을 통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국민연금 의사관철을 위한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활동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국민연금은 먼저 기금 수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업의 배당정책에 주주권 행사의 초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수립해달라는 요구에 묵묵부답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저배당·무배당' 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 높이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자본시장의 위축이 우려된다는 목소리와 반쪽개혁에 불과하다는 불만이 교차하면서 세부방안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보입니다.

연합뉴스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채택에 따른 국내 자산운용업계와 기업경영 영향 등을 짚어본 기획기사 3편을 송고합니다.

]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지침을 말한다.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와 같은 투자자가 큰 집의 집안일을 맡은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고객이 맡긴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국민의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면서도 소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을 얻었던 국민연금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을 관리·감독하는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공청회를 통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방안을 공개했다.

복지부는 26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방안을 확정하려 했으나 경영참여를 배제한 데 대해 노동·시민사회 측 위원들이 반발하면서 의결이 미뤄졌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오는 30일 다시 회의를 열어 도입안을 재논의한다.

◇ 국민연금 입김 세진다…위탁운용사 활용한 주주활동도
도입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기업의 '경영간섭' 시비와 과도한 영향력에 대한 우려 해소 차원에서 주주권 행사범위를 단계적, 점진적으로 확대한다.

일정표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는 ▲ 배당 관련 주주활동 개선 ▲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 ▲ 주주대표 소송 근거 마련 ▲ 손해배상 소송 요건 명문화 작업을 완료한다.

우선 기금 수익과 관련이 크지만,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분야인 배당 관련 주주활동에 집중한다.

지금까지는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 요구를 무시하는 기업에 압박 수위를 높이려면 단계별로 1년씩이 소요됐지만, 하반기부터는 대화를 거부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블랙리스트'에 올려 압박한다.

배당정책 수립을 요구받는 기업도 연간 4∼5개에서 8∼10개로 늘리고 필요하면 주주제안권도 행사한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투자기업의 주총 안건에 대한 찬반 결정내용을 원칙적으로 주총 이전에 모두 공시하기로 했다.

현재는 의결권 행사 내용을 주총 후 14일 이내에 공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주주대표 소송도 도입한다.

기업 이사가 횡령, 배임 등으로 기업에 손해를 끼친 경우에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민연금이 주주대표로 소송에 나서게 된다.

내년에는 ▲ 중점관리사안 추가 선정·확대 ▲ 기업과 비공개 대화 확대 ▲ 이사회 구성·운영, 이사, 감사선임 등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 위탁운용사 활용한 주주활동 확대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

국민연금이 현재는 배당 확대에만 국한해 주주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기업의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일가 사익 편취행위, 횡령, 배임, 과도한 임원 보수 한도, 지속적인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 없는 경우 등 주주가치와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사안으로까지 주주권 행사범위를 확대한다.

이들 사안은 배당 문제와 더불어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해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이사회·경영진 면담을 통해 개선대책을 요구하고 비공개 서한을 발송하는 등 비공개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위탁운용사를 선정·평가할 때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기관에 가점을 부여한다.

국민연금에서 자금을 받은 회사도 주주활동 등 수탁자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또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도 위임할 계획이다.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의결 방향을 주도한다는 우려를 해소하려는 목적이 있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① 주주권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 '사외이사 추천' 빠져…경영간섭 시비 차단
2020년에는 ▲ 미개선 기업 대상 의결권 행사 연계 ▲ 미개선 기업 명단 공개 및 공개서한 발송 등 더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비공개 대화에도 불구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의결권 행사에 반영해 주총에서 횡령, 배임, 부당지원행위, 경영진 사익 편취행위를 주도한 이사 임원이나 사외이사, 감사의 선임을 반대한다는 방침이다.

또 이들 기업을 공개대상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 공개적 서한을 발송해 개선하도록 요구하며 이런 사실을 외부에 공표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이런 주요 주주활동은 현행 의결권전문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승인을 받게 된다.

위원회는 이해 상충의 우려가 있는 정부인사를 배제하고 가입자대표 등이 추천한 민간 전문가 14명 이내로 구성된다.

하지만 주주제안을 통한 사외이사 후보 추천이나 국민연금이 의사관철을 위해 다른 주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위임장 대결 등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활동은 '제반여건이 구비된 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앞서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제시한 책임투자 방안에서 후퇴한 것이다.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의뢰로 연구를 수행한 산학협력단은 국민연금이 중점감시회사(Focus List) 지정, 임원 후보 추천, 위임장 대결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연금사회주의' 논란과 '경영간섭' 비판에 밀려 정부가 한발 물러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는 경영에 참여할 때 생기는 문제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상 기업 지분 5% 이상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는 투자자는 지분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5일 이내에 신고해야 해서 투자 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

이런 도입방안에 대해 국민연금의 책임투자를 강조하는 쪽은 "반쪽짜리 스튜어드십코드"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대로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경영 참여 확대를 위한 숨 고르기일 뿐"이라고 경계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본격 시행하면 당장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기업 299개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주식에 131조5천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의 7%가량이다.

최경일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기업가치·주주가치 훼손 우려 기업과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돼 기금의 장기수익 제고, 기금자산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각에서 과도한 경영간섭 우려를 제기한 만큼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한 절차에 의해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① 주주권 적극적으로 행사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