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7월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후 러시아와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이 아침의 인물] 1차 세계대전 도화선이 된 가브릴로 프린치프
비극의 도화선이 된 건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사라예보 사건’.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6월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저격, 황태자 부부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수사권을 요구했지만 세르비아 정부가 일부만 수용하면서 오스트리아는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프린치프는 1894년 7월13일 사라예보의 서쪽 오블랴이 마을에서 소작농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당시 유럽 각국은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고,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오스트리아는 1908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했다. 이에 반발한 청년들이 민족주의 단체를 조직하던 시기였다.

프린치프는 ‘검은 손’이라는 민족주의 청년 조직에 들어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사라예보 방문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테러 계획을 세웠다. 황태자 부부 암살에 성공한 프린치프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프린치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당국으로부터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결핵에 시달리던 그는 1918년 4월28일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