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경제정책 기조로 내걸었다. 성장률과 고용 등 경제지표가 악화하면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정책 궤도를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성장의 상위 개념”이라며 정책 기조 변경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이미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포용적 성장이란 말을 썼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경제정책 방향이 달라지는 것인지, 정부가 말하는 포용적 성장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포용적 성장의 핵심은 분배 아닌 균등한 기회
포용적 성장의 뿌리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민주당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2006년 4월 내놓은 양극화 해소 정책 ‘해밀턴 프로젝트’가 시초다. 해밀턴 프로젝트는 경제성장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려면 성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경제성장(broad-based economic growth)’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포용적 성장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했다. 세계은행은 2009년 ‘포용적 성장의 체계와 적용’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포용적 성장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노동력 대부분을 포괄하며 광범위한 부문에 걸쳐 이뤄지는 경제성장이라고 정의했다.

주요 20개국(G20)은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포용적 성장과 비슷한 동반성장(shared growth) 개념을 제시했다. 당시 채택된 ‘동반성장을 위한 서울 개발 컨센서스’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며 포괄적이고 탄력 있는 경제성장”을 위해 동반성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1년 포용적 성장을 다룬 보고서를 내놨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포용적 성장 논의의 배경엔 불평등과 양극화가 있다. OECD는 “불평등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많은 OECD 회원국에서 불평등이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있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조너선 오스트리 IMF 조사국 부국장은 지난달 ‘성장이냐 포용이냐’ 보고서에서 “불평등한 사회에선 교육, 보건, 영양, 금융시장, 심지어 정치 참여에서도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양극화 해소에 중점을 두는 문재인 정부 정책 방향과 비슷하다.

눈여겨볼 점은 포용적 성장론이 제시하는 양극화 완화 방안이다. 포용적 성장론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성장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장해야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IMF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성장은 포용의 기초이고 소득 격차를 줄이는 수단”이라고 했다.

포용적 성장은 복지정책 등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은행은 2009년 보고서에서 “소득 재분배 정책은 단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답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포용적 성장이 강조하는 것은 ‘균등한 기회’다. 모든 사람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경제성장이 창출해낸 부(富)의 일부를 가져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는 규제를 개혁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은 “포용적 성장은 동등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 고용 기회를 늘려 경제 규모를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MF는 △교육 기회 확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해소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제고 등을 제안했다.

포용적 성장의 핵심은 분배 아닌 균등한 기회
포용적 성장은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과도 거리가 있다. 많은 국제기구가 포용적 성장론을 제시했지만 최저임금을 매년 10% 이상 올리거나 정부 주도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는 정책을 권하지는 않았다. 포용적 성장은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탈락한 사람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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