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잇달아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당하면서 소송 금액이 세계 최대 규모가 됐다. 27일 국제중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진행 중인 ISD 피청구액은 알려진 것만 6조6000억원에 달해 세계 80여 개 ISD 피소 국가 중 가장 컸다. 일각에서는 과거 줄줄이 ISD를 당한 아르헨티나(최소 60건), 베네수엘라(최소 44건)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ISD 줄소송 당하는 한국… 청구액 6.6조
ISD는 특정 국가가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양국 간 투자협정 규정을 어기고 부당하게 개입함으로써 상대국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을 때 제기할 수 있다. 정치 논리를 경제에 적용하는 포퓰리즘이나 국가의 민간경제 개입이 많은 나라일수록 ISD를 당할 확률이 높다.

2012년 론스타는 외환은행 투자 회수(매각)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고의로 승인을 지연하고 부당하게 과세해 손해를 봤다며 5조3000억원대 ISD를 제기했다. 2015년 이란 가전회사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한국 정부가 ISD에서 처음 패소해 730여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올해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메이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부당하게 개입해 자신들이 손해를 봤다며 합계 1조700억원대 ISD 절차를 시작했다. 스위스 승강기 제조회사 쉰들러도 지난 11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3000억원대 ISD를 제기했다. 올해 터키계 군수업체 하벨산바바로부터 국제중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한 대형 법률회사(로펌) 변호사는 “주로 중남미, 동유럽 국가가 ISD를 많이 당했는데 한국 정부가 연이어 ISD를 당하면서 세계적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라며 “한번 ‘만만하게 보인’ 정부는 안 당할 ISD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중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ISD가 주로 다뤄지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도 중재인 후보 명단에 한국인은 7명밖에 없는 반면 미국인은 217명이나 포진해 있다.

업계 전문가로 꼽히는 한 국제중재 변호사는 “ISD는 단순히 배상책임을 묻는 절차가 아니라 ‘국가개입주의’ 정부라는 국제적 오명을 벗느냐 뒤집어쓰느냐의 문제”라며 “소송 승패에 한국의 국제신뢰가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