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계속되는 가마솥 더위… 폭염을 피하는 방법은
건설회사에 다니는 홍 과장은 퇴근하면 네 살배기 아들과 단지 내 할인마트로 간다. 뜨겁게 달궈진 놀이터 대신 시원한 할인마트에서 채소 이름 맞히기를 하며 아들과 시간을 보낸다. 주말에도 일찌감치 쇼핑몰로 향한다. 그에겐 시원한 쇼핑몰이 최고의 피서지다. 홍 과장이 주로 찾는 곳은 서울 합정역 딜라이트스퀘어. 오전에 키즈카페에서 1시간을 보내고, 서점에 들러 구경하거나 점심을 먹고나면 금세 서너 시간이 지나간다. 그는 “주차비가 무료인 쇼핑몰을 찾아다니거나 주차비 할인 혜택을 따져서 이용하는 게 팁”이라고 했다.

매일 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김과장 이대리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가장 흔한 건 마트나 수면방 등으로 폭염을 피해다니는 ‘도피형’이다. 남들은 아직 모르는 사무실용 냉방기기를 사용하는 ‘얼리어답터형’도 적지 않다. 폭염을 견디는 직장인들의 비결을 들어봤다.

시원한 곳 찾아 헤매는 ‘도피형’

중견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신 대리(28)는 이달 들어 매주 토·일요일에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시원한 데다 전기료 폭탄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대리는 관리비 걱정에 아예 에어컨을 집에 설치하지 않았다. 찜통이 돼 버린 집에서 사무실로 피서를 가는 이유다. 부가적인 장점도 많다. 밀린 일도 정리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펼쳐든다. ‘월요병’이 없어진 건 덤이다. “요즘엔 에어컨 바람을 쐬려고 회사에 나오는 것 같아요. 회사가 제일 좋다는 생각이 입사 이후 처음 들더군요.”

공공기관 종사자에게는 사무실이 ‘폭염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울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김 대리(28)는 요즘 내근보다 출장을 선호한다. 여름철 실내 온도를 평균 28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한 산업통상자원부 지침 때문이다. 사무실은 솔직히 너무 덥다. 김 대리는 “건물이 통유리 구조라서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엔 3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자기만의 도피처를 찾은 직장인도 있다. 잡지사에 다니는 임 대리(36)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밥도 먹지 않고 수면방으로 달려간다. 18개월 된 딸이 감기에 걸릴까봐 집에서는 에어컨을 마음대로 틀지 못해 매일 밤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그는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주고, 조용하기도 해서 꿀맛 같은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경기 판교까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박 과장(38)은 ‘탄력근무제’를 신청해 퇴근시간을 오후 6시에서 오후 5시로 앞당겼다. 퇴근시간대 지하철은 찜통이라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박 과장 회사에선 전체 직원의 약 70%가 탄력근무제를 신청해 한 시간 일찍 퇴근한다. 박 과장은 “한여름 무더위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탄력근로제가 인기”라고 말했다.

이색 냉방아이템 쓰는 ‘얼리어답터형’

수원에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안 과장(33)은 최근 자동차에 설치한 쿨링시트가 무척 만족스럽다. 고급차에만 있는 통풍시트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는데 효과가 기대 이상이다.

쿨방석도 인기다. 쿨방석은 구멍에 물을 부으면 내부에 있는 냉매가 반응해 차가워지는 방석이다.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이 대리(29)는 점심을 먹자마자 책상에 앉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고 쿨방석에 앉으면 잠깐이나마 더위를 잊는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몸부림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김 대리(28)는 선풍기처럼 생긴 공기순환기(에어 서큘레이터)를 구매해 사무실에 뒀다. 공기순환기를 에어컨과 함께 작동하면 공기를 순환시켜 실내온도를 2~3도가량 빠르게 떨어뜨려준다.

양산은 이제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온라인 쇼핑업체에 다니는 윤모 과장(37)은 점심 시간과 출퇴근 시간마다 검은색 양산을 들고 나간다. 남자인 그가 양산을 쓰게 된 것은 지난주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부터다. 한국보다 직사광선이 더 뜨겁게 내리쬐는 일본에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자들을 보고 용기를 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무늬 없는 양산을 구매해 쓰기 시작했다. 여직원들에게 양산을 빌려주며 평소 데면데면했던 사이도 가까워졌다.

냉수 샤워하러 사내 헬스장 등록하기도

성능 좋은 에어컨으로 바꾸거나 하나를 더 들여놓는 직장인도 있다. 건설회사 직원 박모 사원(32)은 얼마 전 집 에어컨을 새것으로 바꿨다. 친구에게 중고로 구매한 에어컨을 한 달 내내 틀자 평소 5만~6만원 수준이던 전기료가 30만원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가 바꾼 에어컨은 희망온도에 도달하면 최소한의 전기만 소모하는 최신식 인버터형 에어컨이다. 가격은 중고 에어컨에 비해 수십만원 비싸지만 전기료가 최대 70% 넘게 줄어든다는 얘기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사내 헬스장에서 운동 대신 샤워만 즐기는 직장인도 있다. 전자부품 업체에 다니는 이 대리(34)는 얼마 전 회사 건물 2층에 있는 사내 헬스장에 등록했다. 다이어트나 운동엔 관심이 없다. 매일 두세 번씩 냉수 샤워를 하기 위해서다. 아침에 출근한 뒤 한 번, 점심식사 후 한 번이다.

한여름 더위가 ‘남의 나라 이야기’인 김과장 이대리들도 있다. IT 회사에 다니는 최 대리(33)는 서울 상암동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서 일한다. IDC는 서버와 저장장치 등의 전산 설비를 보관하고 구동하는 공간이어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실내 온도를 1년 내내 22도 안팎으로 유지한다. 습도 역시 30~60%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한다. 한여름에도 ‘쾌적뽀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최 대리는 “요즘처럼 더울 때는 주말에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것보다 회사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게 더 좋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