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는 물론 불법 사금융회사까지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서울 신촌로 상가 건물에 자영업자 대출 전단이 붙어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대부업체는 물론 불법 사금융회사까지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권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서울 신촌로 상가 건물에 자영업자 대출 전단이 붙어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퇴직금에다 대출까지 얹어 식당 등 가게를 열었다가 빚을 못 갚아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장사만 잘되면 빚 갚는 건 한순간’이라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지만 이자도 못 갚을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각종 비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경기가 악화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으로 사실상 자영업자 대출 총량을 죄기 시작했다. ‘대출 절벽’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은 대부업체까지 찾아 나섰다. 이들이 무너지면 금융시스템은 물론 실물경제까지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소득보다 빠르게 느는 부채

자영업자 대출 연체, 직장인의 3배… 금리 오르면 48만명 '신불자'
자영업자 부채는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자영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은 퇴직금만으로는 모자란 창업 및 사업비용을 주택담보대출, 개인사업자 대출로 충당했다. 자영업자 부채 증가율은 2014년 9.1%로 가계부채 증가율(6.5%)을 뛰어넘은 데 이어 2015년 14.0%, 2016년 12.3%, 2017년 14.8%로 고공행진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 부채는 2014년 407조원에서 지난해 말 598조원으로 3년 새 200조원가량 급증했다.

자영업 가구당 부채는 1억원을 넘어섰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영업 가구당 부채는 2016년 조사 때 9726만원에서 1억87만원으로 1년 새 361만원 늘었다. 상용근로자 가구의 부채(8062만원)보다 2000만원 많은 수준이다. 부채가 있는 자영업 가구만 보면 가구당 빚이 3억2000만원 수준에 달한다.

부채가 아무리 크게 늘어도 많이 벌어 갚을 수만 있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자영업자 소득 증가율은 부채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2016년 조사 때 164.8%에서 지난해 166.8%로 악화됐다. 2016년 기준 자영업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중은 34.8%에 달했다. 100만원을 벌면 35만원은 빚 갚는 데 썼다는 의미다. 상용근로자는 이 비중이 22.0% 수준이었다.

버는 돈보다 갚아야 할 이자가 더 불어나면서 빚을 못 갚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 달 이상 대출금을 연체한 경험이 있는 자영업 가구는 2016년 기준 전체 자영업 가구의 4.9%에 달했다. 상용근로자 가구 중 연체 가구 비중(1.7%)과 비교하면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대출 조이면 취약차주부터 퇴출

금융당국은 급격히 불어난 자영업자 대출을 죄고 나섰다. 지난해 가계대출에 사실상 총량 규제를 씌운 데 이어 올해 3월 은행권에 개인사업자 대출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이달 들어선 적용 대상을 상호금융권까지 확대했다. 가계대출 규제 강화에 따라 개인사업자 대출이 가계자금으로 유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다음달부터 용도 점검도 강화하기로 했다.

자영업자들은 은행, 저축은행, 농·수·축협 등 상호금융권 대출이 막히자 대부업체까지 찾아 나섰다. 이에 따라 대부업체 이용자 중 자영업자 비중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저신용자 중 자영업자는 지난해 6월 말 18.8%에서 12월 말 21.6%로 증가했다. 올 상반기엔 25%까지 늘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전체 자영업 차주 약 160만 명 가운데 대출금 상환력이 떨어지고, 금리 상승에 취약한 차주가 약 48만 명(대출금 38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이거나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약 18만 명(대출금 12조5000억원)은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금리 상승 시 이들이 경제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부채 총량에 초점을 맞춰 단기간에 대출을 조일 경우 취약계층부터 금융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부채 해결을 위해서는 경쟁 완화, 마케팅 및 자금관리 등 컨설팅 확대, 퇴출 지원 등이 필요하다”며 “범정부적 차원에서 소득, 소비와 연계해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