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입증 안돼" 평결 엎고 벌금 1천만원 선고 "관행적 언행, 시대변화 못 따라가"

여제자들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고교 교사가 배심원에게 무죄 평결을 받았지만 재판부로부터 유죄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5부(최환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교사 A(57) 씨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하고 공소사실 중 일부는 무죄로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여고생 성추행 혐의 교사에 배심원 무죄·법원 유죄
공소사실을 보면 A 씨는 지난해 5월께 조퇴를 신청하러 교무실에 온 B(16) 양을 빈 교실로 데려가 손을 주무르거나 무릎을 만지고, 다른 날 성적표 정리를 도와주던 B 양에게 "너를 제일 아끼는 거 알지?…사랑한다"며 양팔로 강제로 껴안았다.

A 씨는 또 수업이 끝난 B 양에게 남으라고 한 뒤 옆구리를 주무르는가 하면 "속살도 하얗나"라며 상의를 들춰 올리고 찢어진 청바지 구멍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허벅지를 만졌다.

A 씨는 비슷한 시기 다른 여제자 6명에게도 손이나 팔뚝 안쪽을 만지고 어깨를 주무르거나 등을 쓰다듬으며 상의 속옷 끈 부분을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쟁점은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A 씨 행동이 추행에 해당하는지, 추행 고의가 있었는지였다.

A 씨와 변호인은 신체적 접촉은 대체로 인정했지만 예민한 부위를 만지거나 과도한 접촉은 아니었다며 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이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신체 접촉이었을 뿐, 추행 고의가 없었고 피해 학생들이 수사기관의 유도신문이나 교사에 대한 반감에 진술이 과장됐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검찰은 "A 씨 행위는 피해 학생에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추행에 해당하며 평소 정기적인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온 A 씨가 자신의 행동이 추행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해 고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배심원 7명은 평의를 열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합리적인 의심 없이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만장일치로 A 씨 공소사실 전체를 무죄로 평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 행위는 교사에게 허용되는 일상적인 신체 접촉을 넘어 피해 학생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에 해당하며 고의도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하고 학생 2명에 대한 추행 혐의는 뚜렷한 증거가 없어 무죄로 판결했다.
여고생 성추행 혐의 교사에 배심원 무죄·법원 유죄
재판부는 "오늘날의 성적 도덕관념에 비춰볼 때 과거 교육현장에서 훈계나 친밀감의 표시로 관행적으로 묵인돼오던 언행이라도 피해 학생의 시각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라면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 씨는 범행을 반성하기보다 정당화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며 "다만 성에 관한 시대적 상황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과거 언행을 지속하다 범행에 이른 점, 추행 정도가 심하지 않은 점, 피해 학생 4명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가장 큰 피해를 본 B 양에게 위자료 5천만원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과 다르게 선고한 이유에 대해 "권고적 효력만 가지는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을 가급적 존중하고 있지만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저히 부당할 경우 예외적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