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형 철도회사인 JR히가시니혼(東日本)의 최대 노조인 히가시니혼여객철도노조 조합원 70%가 노조 집행부의 강경투쟁 방침에 반발해 조합을 탈퇴했다. 올해 2월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추진하자 많은 조합원은 ‘무모한 노사 대립으로 국민 신뢰를 잃었던 과거 국철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며 반발했고 결국 대규모 노조 탈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3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히가시니혼여객철도노조는 지난 6월 열린 정기대회에서 올해 임금협상(춘투)을 패배로 규정하고 집행부를 대폭 교체했다. 노조 집행부가 대거 교체된 데는 전체 노조원의 70%가 넘는 3만3000여 명의 노조원이 최근 5개월 사이에 집단 탈퇴한 영향이 컸다.

히가시니혼여객철도노조 조합원은 2월 초만 해도 전체 사원의 80%에 달하는 4만6780명이었으나 7월 초엔 1만354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노조 탈퇴 행렬은 8월에도 이어질 것으로 아사히신문은 전망했다.

조합원들의 대규모 이탈은 무리하게 강경투쟁에 나선 노조 집행부가 사실상 자초했다. 이 회사 노조는 올해 2월 임금협상에서 연령이나 직종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조합원의 기본급을 정액 인상하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 등 쟁의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87년 국철 민영화로 JR히가시니혼이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파업이 없었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도미타 데쓰로 JR히가시니혼 사장이 “파업하면 회사 신뢰가 무너진다”고 호소한 끝에 간신히 파업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모한 노사 대립으로 국민 신뢰를 잃었던 과거 국철 시대를 반성하며 마련한 ‘파업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노사 공동선언은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노사 신뢰 기반도 무너졌다.

노조 집행부가 앞장서 노사 공동선언을 사문화시키는 모습을 지켜본 조합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조합원 사이에선 의견 수렴도 없이 강경 일변도 투쟁노선을 걸은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히가시니혼여객철도노조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대규모 노조 탈출 움직임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 대부분은 아직 다른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노조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