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투자절벽’과 맞닥뜨리고 있다. 설비투자가 2000년 이후 처음으로 4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는 등 18년 만에 최악의 투자 위축을 보이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투자가 멈춰서면서 성장엔진이 차갑게 식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엔진' 잃은 한국… 장기침체 늪 속으로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6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같은 달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5.9% 줄어 3월(-7.6%) 이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설비투자가 4개월 연속 위축된 건 2000년 9~12월 이후 처음이다. 경기를 이끌어온 반도체 분야마저 투자 감소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히 심상치 않다. 반도체 관련 특수산업용 기계 등 기계류 투자가 9.9% 줄어들면서 전체 투자 감소세를 이끌었다. 6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8% 줄었다. 2013년 2월(-23.1%) 후 5년4개월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건설투자도 부진했다. 주거용 부동산과 사무실 점포 등 상업용 부동산시장 침체로 건축(-3.8%)과 토목(-7.6%) 실적이 모두 줄었다. 정부는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2월 전망치인 3.3%에서 1.5%로, 건설투자는 0.8%에서 -0.1%로 내려 잡았다. 우려하던 투자절벽이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6월 산업생산도 전월보다 0.7% 감소했다. 3월 0.9% 감소에서 4월(1.4%), 5월(0.2%)엔 증가했다가 석 달 만에 다시 돌아섰다. 제조업은 0.8%, 건설업은 4.8% 감소했다. 투자와 생산 등 핵심 실물지표 외에 공장 가동률, 재고, 소매판매, 수출, 고용 등 주요 지표도 일제히 하락 국면을 보이고 있다.

기업 체감경기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7월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를 보면 7월 전체 산업 업황 BSI는 75로 17개월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다. 100 미만이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곳보다 많다는 뜻이다.

상당수 거시 전문가 사이에선 이대로 가다간 한국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L’자형 장기 침체 초입에 이미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경기 침체를 인정하고 이를 막을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도원/고경봉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