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 조선일보에 설문조사·좌담회 등 기사 요청…비용지급 검토
방송활용·종편패널 우군화, 친(親)법원 교수·변호사 활용방안도 담겨
상고법원 홍보에 특정언론 집중 활용…기사계획도 제안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관철하기 위해 조선일보에 홍보성 기사를 집중적으로 요청하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공개된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전략' 문건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2015년 5∼6월 조선일보에 설문조사·지상좌담회·칼럼 등을 싣는 홍보전략을 짰다.

설문조사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던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설문조사가 반복적으로 언론 기사에 인용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 전략'이었다.

법원행정처는 변호사를 상대로 한 별도의 설문조사를 벌여 "전문가 집단도 상고법원에 반대하고 있다"는 논리로 깨기로 했다.

이메일·전화·대면 등 구체적 조사방법과 설문문항을 짜는가 하면 기사가 실릴 날짜까지 계획했다.

법원행정처는 설문조사에 들어갈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전문조사기관에 지급할 용역대금을 상고법원 관련 광고비로 대신 내기로 하고 구체적 세목까지 적시했다.

각계 원로들이 참여하고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진행하는 지상좌담회도 구상했다.

상고법원 도입 법안 처리의 시급성과 국회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등 상고법원에 대한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의 여러 칼럼 코너의 필자와 지면 분량, 영향력 등을 세세히 분석한 다음 특정한 칼럼이 "긍정적 방향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결론짓고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이 함께 작성한 이 문건 말고도 법원행정처가 조선일보를 최우선 홍보 매체로 여긴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홍보기사 계획이 담긴 '조선일보방문설명자료' 문건에는 조선일보를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는 최고의 언론사"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상고제도 개선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앞두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정중히 요청드림"이라고 적었다.

법원행정처가 스스로 기사계획을 짠 뒤 조선일보를 찾아가 부탁하기 위해 만든 문건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같은 해 9월 재차 조선일보에 기사 게재를 요청했다.

'조선일보보도요청' 문건은 설문조사 등 기존 요청에 더해 상고심 사건의 소송가액 총액과 당사자 총수에 관한 기획보도까지 담았다.

같은 해 3월 작성한 '조선일보첩보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조선일보를 "최유력 언론사"라고 부르며 "한명숙 사건 등 주요 관심 사건에 관하여 선고 예정 기일 등 사건진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의 상당한 호감 확보 가능"이라고 적었다.

법원행정처는 당시 여러 언론사를 동원해 상고법원 도입 여론을 조성하는 데 애썼지만, 특정 언론사에 대한 공략 문건을 만든 건 조선일보가 거의 유일하다.

'상고법원 관련 신문·방송 홍보전략' 문건에는 언론사별 홍보전략이 담겼다.

조선일보의 경우 "공세적 논조로 적극 활용"한다고 돼 있다.

반면 한겨레에 대해서는 "민변, 경실련 등의 영향으로 우호적 기사 기대하기 어려움"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독자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명분으로 대등한 지면 요구·확보하는 전략 검토 필요"라며 나름의 전략을 짰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홍보를 위해 방송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2015년 6월 작성된 '상고법원 신문·방송 홍보전략2' 문건에는 종편의 시사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정 패널들이 반복 출연한다는 점을 들어 법률 전문가인 패널들을 우호 세력으로 포섭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법원행정처는 "종편의 특성상 다소 정제되지 않은 표현도 과감히 사용해 감성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어려운 문제를 거친 비유로 이해시키는 등의 장점이 있다"며 "직관적·감정적 이해를 선호하는 대중의 기호에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또 KBS·SBS 등 지상파 방송사나 JTBC의 메인뉴스에서도 기획보도로 상고법원 이슈가 다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참고사항으로 검토했다.

법원행정처는 KBS 보도본부장과 접촉해 '긍정 답변'을, JTBC 사회부장과 교섭해 '메르스 진정 후 우호적 보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문건에 적기도 했다.

언론 외에도 소위 친(親) 법원인사로 분류되는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을 활용해 상고법원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공개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 대응전략 TFT 5차 회의 보고'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2014년 7월 18일 당시 전산정보국 국장과 법원행정처 심의관 4명이 모여 상고법원 도입에 유리한 여론형성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법원에 우호적인 교수가 상고법원 도입안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해 그해 12월 법조전문지에 게재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또 판사 출신 변호사 등이 상고법원에 찬성하는 칼럼을 여러 언론에 게재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갖는 긍정적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방안도 문건에 담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