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 수행비서가 전한 마지막 날 모습 "평소와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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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보지 못하고 당신이 떠난 뒤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故노회찬 빈소 방명록 중)
최근 '드루킹 특검' 과정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며 끝내 죽음을 택한 故 노회찬 의원.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3일 방송되는 ‘궁금한 이야기Y’ 에서는 지난 달 23일 갑자기 떠난 故 노회찬 의원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가 무엇인지 되짚어 본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던 방엔, 이제 손님을 맞이할 주인이 없다.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의 수행비서원은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가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참여한 행사만 해도 다섯 여섯 군데였으며, 책상 위에 놓인 상임위 자료 까지. 늘 업무를 달고 살았다는 노회찬 의원의 일상이 방 안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수행 비서원이 봐온 노회찬 의원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뚝뚝했다는 그는, 요새 말로 ‘츤데레’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니, 그날은 왠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는데...
노 의원의 수행비서였던 하동원 씨는 "그때는 웬일인지 저도 되게 의아했는데 다정하게 '동원아' 이러면서 '피곤하지, 고생했네'라고 말씀해 주셨죠"라고 마지막 날을 회상했다.
지난 달 23일 아침. 예정된 상임 회의를 뒤로하고 동생과 노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자던 노회찬 의원.
차에서 내린지 5분가량이 흐르고, 수행비서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경찰차들이 몰려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들려온 건, 믿을 수 없는 노회찬 의원의 비보였다는데. 그렇게 그가 떠나고, 장례가 치러진 5일 동안에 빈소를 찾은 인원은 수만 명에 달했다.
그의 마지막 배웅길 여기저기에선 사람들의 탄식과 슬픔이 가득했다. 살아생전 노회찬 의원의 무엇이 이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이끌었고, 이들은 왜 이토록 참담해 하며 슬픈 눈물을 흘렸을까? 살아생전의 노회찬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노 의원의 중학교 동창 김봉룡 씨는 "지리산 관악대 한 번 올라갔는데, 거기서 (노회찬이) 장풍을 쓰는 도사를 만났다는 거야. 장풍 도사를 만나서 나는 이제 무술의 달인이 된다고 했지"라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제작진이 만난 노회찬의 50년 지기들은 그의 학창시절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반에서 1, 2등을 놓친 적 없었으며, 게다가 첼로와 펜싱까지 다재다능했다고 한다. 엉뚱하면서도 유쾌했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정의파였다는 노회찬 의원.
그러다 대학 졸업을 앞두던 때에, 돌연 연락이 끊겼고, 다시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공장에서 숟가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용접기술을 배운 그는, 학력까지 위조해 가며 본격적으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 후. 국회 최초로 기업과 검찰, 정부를 상대로 최전방에서 약자의 권리를 외치는 투사가 된 노회찬 의원은, 여러 시민단체들의 시위에도 참여하며, 이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중에서도 제작진의 눈길을 잡는 특별한 시민단체가 있었다.
노 의원은 2013년 '전국 문구점 살리기 연합회' 청계천 집회에서 "뽀글이 아시죠? 제가 방금 뽀글이 먹어봤습니다. 멀쩡하죠? 저는 식약청 관계자들에게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자꾸 유해한 담배는 왜 파냐 이거예요. 저는 담배는 안 피웁니다. 그러나 저 뽀글이는 먹습니다"라고 했다.
때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당시였다. 불량식품을 퇴치한다는 명목 하에, 전국의 문구점들의 식품 판매를 전면 금지시키려 했다는 당시 정부. <전국 문구점 살리기 연합회>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며, 숱하게 국회 문을 두드렸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었다. 그중 유일하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사람이 바로 노회찬 의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청계천 집회 현장에 까지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3일 저녁 8시 55분에 방송되는 SBS ‘궁금한 이야기Y’ 에서는, 노회찬 의원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노회찬 의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노회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3일 방송되는 ‘궁금한 이야기Y’ 에서는 지난 달 23일 갑자기 떠난 故 노회찬 의원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가 무엇인지 되짚어 본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던 방엔, 이제 손님을 맞이할 주인이 없다. 노회찬 의원이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의 수행비서원은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가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참여한 행사만 해도 다섯 여섯 군데였으며, 책상 위에 놓인 상임위 자료 까지. 늘 업무를 달고 살았다는 노회찬 의원의 일상이 방 안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수행 비서원이 봐온 노회찬 의원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뚝뚝했다는 그는, 요새 말로 ‘츤데레’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니, 그날은 왠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는데...
노 의원의 수행비서였던 하동원 씨는 "그때는 웬일인지 저도 되게 의아했는데 다정하게 '동원아' 이러면서 '피곤하지, 고생했네'라고 말씀해 주셨죠"라고 마지막 날을 회상했다.
지난 달 23일 아침. 예정된 상임 회의를 뒤로하고 동생과 노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자던 노회찬 의원.
차에서 내린지 5분가량이 흐르고, 수행비서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경찰차들이 몰려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들려온 건, 믿을 수 없는 노회찬 의원의 비보였다는데. 그렇게 그가 떠나고, 장례가 치러진 5일 동안에 빈소를 찾은 인원은 수만 명에 달했다.
그의 마지막 배웅길 여기저기에선 사람들의 탄식과 슬픔이 가득했다. 살아생전 노회찬 의원의 무엇이 이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이끌었고, 이들은 왜 이토록 참담해 하며 슬픈 눈물을 흘렸을까? 살아생전의 노회찬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노 의원의 중학교 동창 김봉룡 씨는 "지리산 관악대 한 번 올라갔는데, 거기서 (노회찬이) 장풍을 쓰는 도사를 만났다는 거야. 장풍 도사를 만나서 나는 이제 무술의 달인이 된다고 했지"라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제작진이 만난 노회찬의 50년 지기들은 그의 학창시절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반에서 1, 2등을 놓친 적 없었으며, 게다가 첼로와 펜싱까지 다재다능했다고 한다. 엉뚱하면서도 유쾌했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한 정의파였다는 노회찬 의원.
그러다 대학 졸업을 앞두던 때에, 돌연 연락이 끊겼고, 다시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공장에서 숟가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용접기술을 배운 그는, 학력까지 위조해 가며 본격적으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 후. 국회 최초로 기업과 검찰, 정부를 상대로 최전방에서 약자의 권리를 외치는 투사가 된 노회찬 의원은, 여러 시민단체들의 시위에도 참여하며, 이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중에서도 제작진의 눈길을 잡는 특별한 시민단체가 있었다.
노 의원은 2013년 '전국 문구점 살리기 연합회' 청계천 집회에서 "뽀글이 아시죠? 제가 방금 뽀글이 먹어봤습니다. 멀쩡하죠? 저는 식약청 관계자들에게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자꾸 유해한 담배는 왜 파냐 이거예요. 저는 담배는 안 피웁니다. 그러나 저 뽀글이는 먹습니다"라고 했다.
때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당시였다. 불량식품을 퇴치한다는 명목 하에, 전국의 문구점들의 식품 판매를 전면 금지시키려 했다는 당시 정부. <전국 문구점 살리기 연합회>는 이에 문제를 제기하며, 숱하게 국회 문을 두드렸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었다. 그중 유일하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사람이 바로 노회찬 의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청계천 집회 현장에 까지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3일 저녁 8시 55분에 방송되는 SBS ‘궁금한 이야기Y’ 에서는, 노회찬 의원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 우리가 미처 몰랐던 노회찬 의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노회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