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밥 딜런의 내한공연을 본 지인이 말했다. “사실 정말 재미없었어요. 지루해서 졸다 왔어요. 그래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엔 명공연이었다고 칭찬했어요. 그가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세계적인 포크음악의 대가니까요. 그의 음악은 이제 재미없다고 말하면 안 되는 음악이에요.”

일이든 공부든 여가활동이든 재미가 없는데도 재미있다고 어필해야 하는 시대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힙합의 황제 켄드릭 라마가 무더위 속에서 속사포처럼 내뱉는, 알아듣지 못하는 현란한 랩을 미처 따라 부르진 못해도 공연 후엔 “너무 아쉬웠다. 시간이 짧았다. 엄청 재미있는 공연이었다”고 떠들어대야 한다. ‘재미(fun)’는 이제 신념과 다름없어서 이를 거부하면 사회관계망 속에서 영원히 추방당할지도 모른다. ‘재미를 위한 재미’를 외치는 사회 속에서 진짜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재미가 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세계에서 재미없기로 소문난 영국 남자 중 한 명인 저자 마이클 폴리는 이 ‘재미’의 의미를 신화·문학·역사·심리학·신경과학 등에서 뽑은 원천을 바탕으로 일상적 놀이활동에서 찾는다. 그가 쓴 《본격 재미 탐구》라는 책의 제목만 보면 엄청나게 재미있는 놀이 방법을 수십 수백 가지 소개한 책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내용은 정반대다. 재미있는 놀이법 대신 ‘재미’라는 말의 어원부터 왜 수많은 사람이 재미있는 척, 즐거운 척하면서까지 재미를 추구하는지 학문적으로 고찰한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서평을 통해 ‘확실히 재미있다’고 했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가끔 던지는 저자의 농담은 한국 독자의 시각에선 싱거울 정도로 재미없다.

다만 재미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은 신선하다. ‘왜 우리가 맹목적으로 재미를 좇고 중요하게 생각할까’, ‘모두가 재미있다고 하는데 나만 재미없는 이유는 뭘까’를 본격적으로 탐색한다. 심리학자들은 쾌락을 추구할수록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현상 때문에 재미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반면 철학자 니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이자 유흥의 신인 디오니소스적인 난봉꾼의 삶으로서 재미를 바라본다. 멋지고 특이한 휴가를 경험했을 때 더욱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고 콧대가 높아지는 모습은 자신의 경험을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특징을 ‘재미’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도 각종 건배사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 의식과 주도를 정하는 것, 집단으로 모여 알아듣지도 못하는 힙합 음악과 DJ들의 현란한 리듬에 몸을 흔드는 것, 자신이 아닌 것처럼 꾸미는 코스프레 모두 ‘재미’를 통한 저항이다. 그 저항 속엔 집단이 있고 그 집단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이 있다. 저자는 중세시대에 영혼의 구원을 갈구했던 것, 자본주의 시대에 돈을 사랑했던 것처럼 포스트모던 시대인 지금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재미없다고 말하는 영국 남자의 지적 유희는 딱히 엄청 유쾌하진 않지만 내가 왜 재미를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기엔 충분하다.(마이클 폴리 지음, 김잔디 옮김, 지식의날개, 384쪽, 1만7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