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5.5%의 점유율로 애플(11.8%)을 제치고 처음으로 2위에 올랐다. 리처드 위 화웨이 소비자부문 대표가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전략 스마트폰 P20을 소개하고 있다.  /한경DB
화웨이는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5.5%의 점유율로 애플(11.8%)을 제치고 처음으로 2위에 올랐다. 리처드 위 화웨이 소비자부문 대표가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신제품 공개 행사에서 전략 스마트폰 P20을 소개하고 있다. /한경DB
“당나라 태종의 신하 위증은 ‘세상을 바꾸는 데 1년이면 족하고 3년이면 늦다’고 했습니다. 휴대폰 판매량을 세 배 늘려 노키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겠습니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2007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내놓은 목표다. 최 전 부회장이 휴대폰사업을 총괄하는 정보통신총괄 사장 겸 무선사업부장으로 임명되고 한 달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2006년 4분기 기준 노키아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34.1%, 삼성전자는 10.9%로 미국 모토로라에 이어 3위였다.

삼성전자는 그로부터 4년 뒤인 2011년 3분기 처음으로 노키아를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전체 휴대폰 시장에서도 1위로 올라섰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최 전 부회장의 목표가 이뤄진 셈이다.

리처드 위 화웨이 소비자부문 대표는 2년 전인 2016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10여 년 전 삼성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4~5년 안에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전자-애플의 양강 구도가 4년 넘게 이어진 때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저가폰 위주로 제품을 내놓는 화웨이의 목표가 너무 거창하다”는 비웃음도 나왔다.

화웨이는 올해 2분기 처음으로 애플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스마트폰 판매량은 542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41.1% 늘렸다. 시장 점유율도 15.5%로 끌어올려 1위 삼성전자(20.4%)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위 대표는 지난 3일 중국 선전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에 우리가 2위가 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이르면 내년 4분기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누른 화웨이 "내년엔 삼성 잡는다"… 샤오미도 맹추격
‘넛크래커’ 갇힌 한국 스마트폰

한국 스마트폰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화웨이를 비롯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업체에 치이고 있다. ‘넛크래커’ 속에 갇힌 호두 같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는 2011년 연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뒤 지금까지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은 2013년 32.3%로 고점을 찍은 뒤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빈자리는 중국 업체들이 채우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화웨이(15.5%), 샤오미(9.1%, 4위), 오포(8.6%, 5위) 등 중국 주요 업체의 점유율을 합치면 33.2%로 삼성전자 점유율을 훌쩍 뛰어넘는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올해 2분기 기준 점유율이 0.8%에 그쳤다. 2013년만 해도 19.7%의 점유율로 1위 차지했던 시장이다. 세계 2위 규모인 인도 시장에서도 급성장한 샤오미와 선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삼성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도 시장에서 판매 1위였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삼성전자가 화웨이, 샤오미의 도전에 직면했다”며 “두 회사가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을 빼앗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애플의 올해 2분기 스마트폰 평균 판매가격(ASP)은 724달러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220달러 수준이다. 애플은 999달러부터 시작하는 고가 제품 아이폰X(텐)의 인기에 힘입어 2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꿈의 시가총액’인 1조달러를 달성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상반기 프리미엄 제품인 갤럭시S9의 판매가 부진했다. 삼성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하반기 전략 제품인 갤럭시노트9을 작년보다 1개월가량 빠른 이달 내놓을 예정이다.

LG전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피처폰 시절에는 ‘초콜릿폰’ ‘프라다폰’ 등으로 한국은 물론 북미, 인도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했지만 스마트폰 전환에 늦었던 것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3%로 8위에 머물고 있다. 출하량은 95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지난 5년 새 가장 적은 출하량이다. 상반기 전략 스마트폰 G7 씽큐(ThinQ)의 흥행 실패가 원인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플래그십 제품에 차별점이 없는 게 LG전자의 약점”이라며 “인도 중국에서의 성장 기회를 활용하지 못해 꾸준히 출하량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내년부터 플래그십 라인업 G·V 시리즈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수익 강화 방안을 찾고 있다.

폴더블폰이 기회 될까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강점은 하드웨어였다. 프로세서, 디스플레이, 저장용량 등 모든 측면에서 타사 대비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였다. 하지만 스마트폰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고 중국 업체들도 삼성전자와 같은 스펙의 부품을 내장하면서 이 같은 경쟁력이 사라져버렸다.

되레 중국 업체가 삼성전자보다 신기술을 먼저 도입하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화웨이는 올해 3월 출시한 플래그십 제품 P20 프로에 세계 최초로 후면 트리플 카메라를 장착했고, 오포는 6월 공개한 전략 스마트폰 ‘파인드X’에서 슬라이딩 방식의 카메라를 내장해 베젤(화면 테두리)을 최소화했다.

스마트폰 업계에선 폴더블폰 같은 새로운 폼팩터의 등장이 삼성전자가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릴 기회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하드웨어에선 여전히 삼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연내 폴더블폰을 공개하고 내년 초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화웨이도 삼성전자보다 앞서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을 공개한다고 공언한 상태여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폴더블폰이 정체된 모바일 시장을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