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주력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거대 시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 기술 경쟁력까지 높이면서 한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먹여 살리는 최대 시장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최대 라이벌(경쟁자)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중국에 줄줄이 1위 자리 내줘

5일 산업계에 따르면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산업은 물론 디스플레이,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잇달아 추월하고 있다. 2005년만 하더라도 중국의 디스플레이산업은 한국과 기술격차가 꽤 났다. 점유율도 미미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을 발판 삼아 BOE는 지난해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점유율 21.5%로 1위에 올랐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산 저가공세에 맥없이 무너지며 2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 오포, 샤오미 등 중국 3개사의 점유율은 다 합쳐도 삼성전자에 못 미쳤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이들 3개사의 점유율 합계는 33.2%로 세계 1위인 삼성전자(20.4%)를 뛰어넘었다.
韓 디스플레이·배터리 제친 中… 4차 산업혁명서도 쾌속 질주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은 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점유율을 크게 늘려가고 있다. 중국 CATL은 올 상반기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5713.6㎿h를 기록해 일본 파나소닉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 2위였던 LG화학은 중국 업체들에 밀려 4위로 처졌다.

올 상반기 한국 조선업은 3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수주실적 1위를 달성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세계 선박 발주량 1234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441척) 가운데 한국이 40%에 해당하는 496만CGT(115척)를 수주했다. 2위는 36%를 가져간 중국(439만CGT·203척)이었다. 하지만 6월 말 기준 수주잔량은 중국이 2825만CGT(38%)로 가장 많고, 한국은 1748만CGT(23%)에 그쳐 ‘재역전’이 예상된다.

◆“주요 산업 1년 내 따라잡힌다”

주요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뿐 아니라 주요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도 1년 미만으로 좁혀졌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올해 초 발표한 ‘2017년 산업기술수준 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오,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시스템반도체, 스마트카 등 26개 산업 분야의 한·중 기술 격차는 평균 0.7년에 불과했다. 평가관리원이 총 26개 산업기술 분야의 407개 세부 기술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내용이다.

2013년 조사에서 1.1년이던 격차는 2015년 조사에서 0.9년으로 줄었고, 이번에 다시 0.7년으로 좁혀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역전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 1위 제품 수는 중국이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상품·서비스 71개 분야의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중국 기업은 이동통신 인프라와 냉장고, 세탁기 등 9개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한국 기업의 1위 품목은 스마트폰과 D램, 낸드플래시 등 7개에 그쳤다. 중국은 전년 대비 1위 품목이 2개 증가한 반면 한국은 2015년 8개에서 2016년 7개로 줄었고 지난해에도 답보 상태였다. 미국 기업은 일반의약품과 반도체 장비 등 24개 분야에서, 일본 기업은 이미지센서, 카메라 등 10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4차 산업혁명 분야도 뒤처져”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에서도 중국에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주요국 4차 산업혁명 기술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한국의 4차 산업혁명 12개 분야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중국은 108로 한국을 앞섰다. 중국에 비교 열위인 분야는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우주기술 △3D프린팅 △드론이었다. 경합하는 기술은 △첨단소재 △컴퓨팅기술로 나타났다. 한국이 비교 우위인 분야는 △바이오 △사물인터넷 △로봇 △증강현실 △신재생에너지에 불과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독일,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제조업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고 있다”며 “한국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신기술을 확보하고 디지털 분야의 인력을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준영/고경봉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