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리스 확대·소비 촉진에 기여' 기대 불구, 주무부처는 신중
업계 "성역없는 규제완화 논의 필요" …언론 '정부내 논쟁' 예상


매달 받는 급여를 현금이 아닌 다른 결제수단으로 받으면 어떨까.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디지털 화폐'로 급여를 받으면 돈을 찾으러 은행에 가지 않고도 필요할 때 쓸 수 있는데...

규제완화와 세제우대가 적용되는 경제특별구역인 국가전략특구 입주기업이 급여를 디지털 화폐로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도쿄도(東京都)와 한 벤처기업의 제안이 일본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은 지난 70년간 노동기준법에 "급여는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규정, 준수해 왔다.

노동기준법 관장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곤혹스러워하는 입장이지만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현금없는 사회(캐시리스)' 추세와도 맞물려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14일 열린 국가전략특구 자문회의에는 급여를 스마트폰에 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도레밍홀딩스 관계자가 참고인으로 참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 관계자는 "휴대전화 전자지갑에 임금을 디지털 화폐로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임금 디지털 화폐 지급이 "외국인에 대한 대책뿐만 아니라 소비도 촉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급여 디지털화폐 지급허용"… 도쿄도 규제완화 제안 파문
이 논의는 지난 3월 도쿄도가 특구관련 회의에서 제안한데서 비롯됐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는 회의에서 '페이롤카드'라는 익숙지 않은 단어를 사용했다.

미국의 경우 내년에 1천200만명 이상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카드는 은행계좌를 통하지 않고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카드를 가리킨다.

은행계좌가 없는 사람이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고이케 지사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취지에서였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하려면 일본내에 주소가 있고 1년 이상의 체류자격이 있어야 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작년 10월 현재 외국인 노동자는 127만명에 달했다.

1년전에 비해 18%나 증가했다.

인력부족이 배경이다.

도쿄도 담당자는 "급여통장을 개설할 수 없다는 진정이 많이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 규제완화 논의는 정부내에 논쟁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3일 전했다.

은행계좌로 돈을 보낼 필요가 없어 '현금없는 사회'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주무부처인 후생노동성은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1947년에 제정된 노동기준법은 급여 이체를 규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회사는 급여일에 현금을 봉투에 넣어 종업원에게 건네준다"는 취지의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현재 주류인 은행계좌로의 이체도 어디까지나 예외로 취급하는 고색창연한 규제라고 한다.

디지털 화폐는 당연히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15년 한 벤처기업이 규제완화를 요청하자 후생노동성은 "회사파산으로 임금을 전액 보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일축했다.

이후 3년. 경제산업성이 조사한 일본 국내의 2016년 캐시리스 결제는 60조 엔(약 600조 원)에 달해 2008년 보다 70% 증가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젊은이가 늘고 전자화폐로 물건을 사는 모습도 흔하다.

잠재적인 수요도 커지고 있다.

현행법으로도 급여의 일부는 노사합의로 현금 이외의 결제수단으로 지급할 수 있는 "예외"는 있다.

GMO인터내셔날그룹은 올봄 비트코인으로 급여의 일부를 지급하기로 했다.

SNS 서비스인 LINE은 스마트폰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폐를 사원의 복리후생의 하나로 매월 급여와는 별도로 나눠주고 있다.

고이케 지사가 요청한지 5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후생노동성은 "특구에서 시행하는게 의미가 있느냐"며 회의적이다.

후생노동성의 입장에서는 노동자 보호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규제를 완화해 현금 이외의 급여지급을 인정했다가 불량기업들이 가치를 믿을 수 없는 독자적인 가상화폐를 종업원에게 급여로 지급하는 등 악용될 우려도 있다.

일본의 캐시리스 결제 비율은 20% 정도다.

90%에 이르는 한국은 물론 40-50%대인 미국과 유럽에도 크게 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이 비율을 40%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현금 이외의 급여지급이 그 돌파구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캐시리스라고 지적하고 디지털 화폐는 안전성과 파산시 보상 문제 등 과제도 많지만 기술혁신을 무시해서도 안되는 만큼 금융과 IT를 융합한 핀테크 업계에서는 "성역없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